아이가 집으로 가져온 수수께끼.
체험학습 다녀온 다음날, 아이 아버지께 전화가 왔었다. ‘우리 애가 이러이러해서 맞았다던데 맞나요?’ ‘아, 아이가 친구한테 잔소리하다 쳤더니 기분 나빠서 자기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얘기해보겠습니다.’ ‘우리 아이도 그랬다고요?’ ‘네, 그 얘기는 못 들으셨나요?’ ‘하, 둘 다 똑같네요. 알겠습니다.’
그 아이는 집에서 더 혼날 거란 예감이 들었다. 내가 고자질해버린 느낌이랄까? 하지만 나는 불편한 진실을 얘기해야하는 자리에 있다.
아이들의 싸움은 매일, 아니 매 시간 벌어진다. 얘기를 듣다 보면 피해자가 아닌 아이가 없다. 결국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다 모여 있는 교실에서도 이러는데, 한 아이만 데려다놓은 집에선 피해자가 속출하겠지.
진실은 언제나 하나다. 하지만 그 진실이 집에 오면서 바뀌어버린다는 게 문제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마음 굳게 먹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셔라.
첫째, ‘너는 어떻게 했어?’ 사건의 진상은 ‘당한 일’이 아니라 ‘서로가 한 일’에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한 일보다 자신이 당한 일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 당신은 아이의 1인칭 시점에서 사건을 듣고 있는 거다. 이 귀여운 감독의 이야기를 다시 보려면 ‘그래서 너는 뭐 했어?’를 알아야 한다.
한 명이 때리거나 욕을 하면 다른 한 명도 소리지르거나 밀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덧셈뺄셈이 뭔지도 모르는 1학년도 당했으니 갚아서 0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막힌 수 감각을 지녔다.
진실에 다가갈 때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물어봐야 한다. ‘너가 한 것도 말해봐.’ 경험상 일방적인 괴롭힘은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난 아무것도 안 했어.’에 ‘진짜? 솔직히 말해봐.’하면 우물쭈물 거릴 거다.
둘째, ‘왜 그랬어?’ 이 질문의 당사자는 본인과 상대 아이 모두 해당된다. ‘그 친구가 왜 그런 것 같아?’라고 물으면 그 친구와의 사이가 이미 안 좋았거나 그 직전에 자기가 했던 실수가 있음을 알게 된다. 또는 다른 일로 기분이 매우 안 좋은 상태에서 장난으로 건드린 게 화근이 되기도 한다.
‘너 왜 그랬어?’는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분노나 억울함으로 가득차 자신도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될 때가 많다. 이유를 말하며 과정을 다시 살펴보고 스스로를 인지하다보면 인상만 강했던 사건의 갈래가 잡힌다.
그리고 부모도 아이의 감정선을 파악해 공감해줄 수 있다. 물론 감정은 자유여도 말과 행동의 표현은 다스려야 함을 보충수업해줘야 한다.
셋째, ‘예전에 무슨 일 있었어?’ 같은 아이와 갈등이 계속된다면 이미 그 관계 자체가 틀어졌을 수 있다. 똑같은 일이 다른 친구와 생겼다면 가볍게 넘어갈 일도 걔라면 달라지는 거다.
그래서 나는 늘 친구를 차별하지 말라고 한다. 모두와 친하게 잘 지내라는 말이 아니다. 다른 애들한테는 잘해줄 일을 걔한테만 과민반응하면 그게 차별이다.
열 살배기가 지닌 그 기나긴 역사에 다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너가 이번 일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전 일들이 쌓여서 반응한 것임을 알려줄 수 있다.
우리 쿨하게, 뒤끝없이, 옛날일 끄집어내기 없기! 그 일은 그때 끝냈어야돼. 새로 시작하자! 그 멋지고 이쁜 만화 주인공들처럼 원수와도 화해하는 거야!
넷째, ‘누구한테 말했어?’ 이 질문으로 알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친구들에게 퍼트려 일을 더 크게 만들지 않았는지와 본인이 교사에게 도움을 바란다면 명확히 사건을 전달했는지이다. 본인 입장에서의 얘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관계는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일방적인 가해자가 된 상대 아이는 더 이상 사과하고 굽혀줄 마음이 사라진다.
갈등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아니 사실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도 함부로 얘기를 전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일이지만 다른 이의 일이기도 하다. 상대 아이의 이미지를 망칠 권리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교사와 당사자들끼리의 대화가 다 끝났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대략적인 이야기만 전하고 삼자대면은 안 이뤄졌을 수 있다. 교사가 상대 아이와 상담 중이거나 시간이 부족해 다음에 계속하기로 했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기억이 사라지거나 감정이 더해지지 않도록 할 말들을 함께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과정을 여러번 거치다보면 진술 확보가 더욱 원활해진다. 물론 나는 진실을 알려고 하기보다 ‘그랬어? 속상했겠다. 선생님께 진지하게 말씀드려 봐.’ 를 좀 더 추천한다.
아이에게는 판사만이 아니라, 변호사도 필요한 법이다. 변호사 상담하러 와서 펑펑 우는 이도 많다고 한다. 너의 잘못도 있다고 반성해야된다는 건 알려줘야겠지만 아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휴지를 건네주며 토닥이는 손’을 기대하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악역은 교사가 맡을 테니 여러분은 콩깍지를 좀 쓰셔도 된다. 자기가 쓰고 있다는 걸 알고 교사가 벗기려 할 때 막지만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작은 이야기 한 토막+
저학년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 부르지 말고 손들고 기다리고 있어’
다른 아이를 봐주다 뒤를 돌아보니 남자 아이 하나가 가운데 손가락을 위풍당당하게 내밀고 있었다.
‘설마 1학년이? 나한테 장난치는 건가? 아냐, 뜻을 모르는 걸 수도 있어’
아이는 무표정으로 떡하니 정확히 그 행동을 하며 입을 뗐다
‘선생님’
‘뭐야?’
‘저 피나요’
그의 가운데 손가락첫마디에는 싸인펜 자국 같은 빨간 동그라미가 보였다.
‘하.. 이따 보건실 갔다 와’
그 눈곱만한 피가 그날의 우리 모두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