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땐 곱게 보내줘라 쫌
전화 너머 들려온 덤덤한 그녀의 목소리는 나의 마음을 참 아프게 했다. 분명 펑펑 울고 싶었을 텐데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이, 꾸욱 참는 게 많이 느껴져서일까. 여하튼 그랬다.
내가 아는 그녀는 정말 괜찮은 여자다. 명문대 출신에 꽤 괜찮은 회사를 다니고 건강관리에도 열심히며 재테크의 귀재에 또래보다도 잘 가꿔진 모습은 친구로서 봐도 어딜 내놔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며 본 결과 연애에서만큼은 남들이 인정해주는 나의 본질의 가치들 성실도, 사회적 지위, 외모 자산 등등이라는 것들이 생각보다는 연애 흐름에는 1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 연애는 생각 이상으로 정말 제멋대로인 녀석 그 자체고 결혼은 그 제멋대로인 녀석을 어떻게든 숨죽여 이뤄낸 그랑프리와 같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타인과의 합을 이뤄 나가는 과정이니 ‘조낸 어려운’ 일인 거다.
주식회사의 (주) 에는 생명체의 의미가 부여된다고 한다. 나는 연애의 ‘연’에 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연이라는 녀석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기 다루듯 잘 키워나가야 한다. 후회가 없으려면 주어진 시간 내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고 잘 키워나가다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게 느껴지는 때가 오면 온전하게 떠나보내 줄도 아는 모습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떠나보내는 과정에 있어서의 타이밍. 대부분 연애는 둘 사이의 agreement로 시작하지만 이별은 한 사람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밀어붙여진다. 정말 더럽고 치사하기 그지없다. 사랑에 불씨를 어떻게든 꺼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사람한테는 받기 싫지만 받아 들어야 하는 결과를 남길뿐이다. 그렇지만 서도 이 타이밍을 동일시하는 일이란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웅? 잡소리는 집어치워줄래? 좋은 이별 같은 건 없다. 이별이 좋은 이별이려면 이별을 하면 안 된다. 적어도 남의 집 소중하고 귀한 아들딸들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면 안 되는 것이 좋은 이별이란 말이다.
그러려면 이별은 어떻게 해야만 그나마 예의가 있을까?
1. 상대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주되, 질질 끌어서 양쪽의 시간은 낭비시키지 맙시다.
2. 적어도 끊어낼 때는 예의 있고 정중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끝냅시다.
3. 적어도 상대의 자존감, 감정선을 무너뜨리는 말만큼은 하지 맙시다. 반품/환불은 물건이 온전한 상태에서 가능한 것처럼 상대방의 자존감도, 마음도 온전하고 건강하게 돌려줍시다.
그런데, 사실
좋은 이별이란 없다. 이별이 좋으려면 이별을 하면 안 되지. 이별 앞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무용지물이고, 최소한의 배려도 없다는 걸 우리 모두는 공감할 것이다. 차라리 같이 마음이 식어버리는 알약을 개발하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별은 쓰고 아프고 시리고 괴롭다.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고 세상일들이 모두 덧없어지는 것은 덤.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힘을 내라고 얘기하는 게 아이러니하면서도 상대편 입장에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다.
“고생했어, 너무 자책하지마, 세상에 반은 여자고 남자야. 이별의 이유를 찾으려 그 감정에 매몰되어 소중한 너 자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자. 넌 지금 이순간이 가장 예쁘고 빛나니까 충분히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으니까”
이 가을, 우리 모두가 가급적이면 더 사랑받는 연애와 덜 상처 받는 이별을 하길 바라며, 우리 모두는 세상 가장 소중한 존재란 사실을 잊지 말아요.
14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