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마당 쓸 거면 대감집에 갔어야 한다
누군가를 모시는 경험은 시집살이 때나 겪을 줄 알았다
놀랍게도 나는 24살부터 시집살이 미리 보기에 하드트레이닝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까라면 까고, 뛰라면 뛰고 엎으라면 엎으라는 지시를 그 누구보다도 잘 따르는 자랑스러운 스킬을 갖고 있다. 가끔은 주제파악 못하고 나의 인풋을 넣어 안건을 만들기도 하는데 혹시나 나의 의견이 일감을 주신 주인의 기분을 해할까 봐 플랜 B로 가져가는 철저한 ‘을‘마인드셋은 잊지 않고 있다.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넵, 네 넵, 아 넵, 아! 넵’ 그리고 ‘죄송합니다’.
어머니 저는 훌륭하게 자라 고급노예가 되었습니다
강남치맛바람세대의 엄마는 내가 ‘신촌’에서 놀지 못한 거가 가끔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 ‘엄마, 신촌에서 놀던 애도 내 옆에서 같이 장표질하고 숫자 캐고 있어!‘ 대학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서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고로 미래의 내 자식은 대학 따윈 없다. (장학금을 타서 다니면 몰라도) 미안하지만 넌 이 험난한 사회에서 밥벌이하며 살아남는 서바이벌 능력부터 길러야겠습니다.
첫 대감집부터 잘 골랐어야 한다
킹차갓무직을 갔어야 하는데 다른 곳으로 시작해 버린 나의 경쟁력은 매우 아쉬워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킹차갓무직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내 능력으로 이 회사를 잘나 보이게 하겠어’라는 건방진 마음은 20대의 패기에 불과했다는 걸 먼 세월이 지나 알게 되었다. 마당 쓸고 도랑치고 가재 잡는 건 똑같은데 꽂히는 노동비가 다른 건 미래의 많은 것을 좌우한다. 재벌 3세도 본인 아빠 회사를 가고 싶어 하는데 내가 뭐라고!
돈은 권력이고, 신이고, 여유고, 낭만이다
이 내용은 고고한 백조, 품격 있는 선비처럼 살겠다며 모든 걸 놓은 ‘척’ 하는 나의 동년배 친구들에게 바친다. 뭔 일을 하던 닥치고 통장 분리하고 돈 모으라고. 친구 좀 없어도 되니 어울림비 아끼라고. 후배들한테 좋은 언니 오빠 눈누난나 형아로 인정받지 않아도 되니 밥 사주지 말라고! 백세시대에 명랑하고 쾌활한 노인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백은 내가 젊음을 태워 죽도록 모은 돈밖에 없다.
오늘도 땀 삐질 삐질 흘리며 파블로브의 개같이 출근하는 나에게 외쳐본다.
돈! 쓰지 마!
밥! 사 먹지 마!
사람들과! 어울리지 마!
그렇지만! 웃는 척은 해!
오늘도 이 험난한 직장인이라는 무대에서 잘 살아남아야 한다. 너 나 우리 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