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평균나이 44.2, 아직은 좀 더 응석 부려도 되잖아?
첫 회사에서 처음 마주한 사수는 말년차 대리였다. 그때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왜 이 나이 든 아저씨가 나의 사수란 말인가? 멋지게 슈트 업한 예쁘고 핸썸한 선배들이 진한 머스크향을 풍기며 출근할 거로 기대했던 나의 판타지 그야말로 와장창이었다. 꼬질꼬질한 나의 첫 출근일, 담배쪈내나는 아저씨들 사이에 둘러싸여 뼈해장국으로 점심을 푸지게 시작한 양재동의 추억은 아주 오랫동안 잊혔었다.
아 근데 그 쩐내 나는 아저씨, 아니 아가저씨가 내가 되다니
망했다! 몇 번의 이직 끝에 나는 영원한 막내로 안착해 버렸다. 출근길에 풀메이크업에 향수를 골라 뿌리던 젊은 아가씨는 이제 세타필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수분떡칠하고 대충 지난주에 입은 옷 중 깨끗해 보이는 걸 골라 털어 입고 출근하는 아가저씨가 되었다. 정년까지 버티면 55세 응애가 될 수도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귀엽게 나이들 준비를 해야겠다. MZ트렌드를 줄줄 꿰면서 선배들 앞에서 ‘그럼 제가 선배 맘에 탕탕 후루 후루 탕탕 후루루루’ 하는 애교를 부려야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엄습해 온다.
30대 후반이 아직 응애라니!!!!!
한국 평균나이 44.2세. 내 기억 속 우리 엄마아빠의 44세는 젊은 티 졸업한 완전한 아줌마, 아저씨 었는데 이제 대한민국의 평균은 ’ 아줌마, 아저씨‘ 가 되어버린 건가보다. 체감상 내가 속한 회사의 평균 나이도 다를 바 없다. 대기업 평균 나이는 45라는 말을 온몸으로 직감하고 있다. 이 지독한 피라미드 구조에 귀하디 귀한 20대를 들이지 못하는 경기불황을 탓해야 하는 건지, 인구감소에 앞으로 더 높아질 평균 나이를 보며 연금을 못 받을 것 같은 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 좀비상태로 회사에 좀 더 오래 들러붙어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지 답이 안 나온다.
안녕하떼요, 슈퍼주니어, 아니 슈퍼시니어예요!!
지하철 무료 환승자격을 갓 탑재하신 우리 부모님은 이른 은퇴 후 시골생활을 하고 계시는데 너무 심심한 나머지 동네 시니어센터를 갔다가 막내취급 당하고 발길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하셨다. 심지어 돈만 내면 다닐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 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의도 대기를 타야 한다고 하는 요즘이라고 하신다. 내가 노인이 될 때쯤이면 인서울 노인대학은 발 디딜 틈 없을 거라 웃으며 말씀하시는 엄마에게 나는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엄마, 사실 나 회사에서 아직도 막내야’
삐빅, 당신의 병은 젊음증후군입니다
한평생 막내로 살다 보니 몹쓸 병이 하나 생겼다. 홍대병, 예술가병, 아티스트병만치 심각한 ‘젊음증후군’. 최근 빠져있고 탐닉하는 취미, 무심코 선택하게 되는 취향과 내 나이가 맞지 않아 나 스스로에게 ‘젊은 나’라는 부담스러운 가면을 씌우는 리플리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트민녀 대표주자로 불리길 원하며 아이를 키우는 또래 친구들에게 같은 경험치가 없다 보니 ’ 우리 엄마가‘라고 시작하는 추억을 더듬어 어린’척‘의 포지셔닝을 하고는 한다.
오늘도 출근길에 준 크롭티와 하이웨이스트 슬랙스를 챙겨 입고 ‘엔믹스 - 별별별’을 들으며 뽕에 가득 찬 발걸음으로 종종 걷는 나를 보며 생각해 봤다. 아 근데 나 솔직히 너무 귀엽고 트렌디하잖아? 이 나이에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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