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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하 Mar 20. 2022

경이로운 소문

발 없는 말이 유니콘 된다.

“사실 전 책임님이 그분한테 쌍욕 했다고 들었거든요.”


이럴 줄 알았다면 진짜 쌍욕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진짜라면 그로 인해 욕을 먹더라도 지은 죄가 있으니 꿀떡꿀떡 삼켰을 텐데. 하지 않은 일로 욕을 먹는 건 태어나 처음으로 가루약을 삼킬 때처럼 어렵고 쓰기만 했다. 그나마 약은 몸에 좋기라도 하지. 욕은... 당연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좋은 게 없다. 개중에 다행인 건, 약 못지않게 욕도 먹을수록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반말도 안 해봤는데 욕쟁이 성격파탄자가 되어 있는 건 쬐끔 기가 찼지만, 대표님에게 쓰레기 소리까지 들었던 마당에 어지간한 말들은 내게 큰 타격감을 주지 못했다. (참고로 나중에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사과하셨다.)


다만 타격이 크지 않았다 뿐이지 온전히 괜찮았다는 건 아니다. ‘-카더라.’하는 전언들은 평정심이란 적금을 야금야금 깨 먹는 빌런이었다. 이따금씩 적금을 바닥 내고 내가 회사 안의 어디까지, 대체 어떠한 모습으로 구전되고 있는 것인지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나면 곧 정신이 아득해졌다. 평소 소문의 끝인 내 귀까지 얘기가 들렸다는 건, 아직 차마 전해지지 못한 '더 무지막지한 폰도하'들이 도처에 널려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누군가의 시야에서는 진짜 그런 사람인지 평가받는 대상이 됐다는 뜻이었다.


"어딜 보시는 거죠? 그건 제 허상입니다만!"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렇게 외친  그들에게 닿을  없었다. 게다가 본래 의혹을 달고 있는 사람의 발언은 그다지 힘이 없다. 되려 따라붙는 말만 늘어날   보듯 뻔해 침묵을 택했다.  순간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명의 과정이 된다는  고단한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간간이 들려오는 말에 흔들리고 싶지 않아 졌다. 소문의 본질을 생각하다 보니 흔들리는 내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다. 소문이란 놈들은 보통 역변의 아이콘이다. 대체로 그 시작보다 안 좋은 모습으로 확산된다. 예로부터 발이 없는 모습을 가엾이 여겨 그랬는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말을 옮기는 탓이다. 제모습 그대로 옮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누군가는 의족을, 누군가는 날개를, 누군가는 형형색색의 갈기와 뿔까지 덧붙여 끝내는 유니콘의 형상이 되어 있다. 세상에 없던 끔찍한 혼종! 그 기이한 모습에 과연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만도, 그 모습의 당사자라고 추궁받는 입장에서는 속이 상할 법도 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앞서 말한 소문의 본질이 있다. "세상에 없던 유니콘". 말 그대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날 평가하려던 사람들은 본인들이 흥미를 느꼈던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물론 어딘가에는 여전히 그 전설을 떠올리며 유니콘의 존재가 있을 거라 믿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럼 그냥 믿게 두면 된다. 아무리 믿어도 결과적으로 유니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길든 짧든 나를 겪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1) '들었던 게 있는데 안 믿는다.'는 말과 2) '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어차피 이미 퍼져버린 말은 회수가 안 되고, 사실이 아니라면 결국 그 말은 흩어진다. 흔들려야 할 것은 소문과 그걸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들의 안일함이다.


매일 밤, 다음 날 출근을 위한 짐을 챙긴다. 늘 그랬듯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사무실에 들어설 거고,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간간히 웃을 거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쉼 없이 내뱉다가도, 주어진 일은 착오 없이 해낼 거다. 그저 평소처럼, 하던 대로 시간을 쌓을 거다. 그 시간들이 믿음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소문으로 고통받는 이에게 뻔뻔해지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뻔뻔함이 아니라 당당함이다. 오해로 날 거르는 사람이 있다면 오예라고 외쳐보자. 사람을 잃은 손해는 당신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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