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도하 Jan 22. 2023

자주 물드는 마음

26년 산 밴드: 자우림 예찬론

문제야 문제, 온 세상 속에 똑같은 사랑 노래가.
와닿지 못해. 나의 밤 속엔 생각이 너무 많네.
- DEAN <instagram> 중에서

  제목이 instagram이 아니라 insight라고 불려도 이상할 게 없는 가사라고 생각했다. 한국 가요 차트의 요약 그 잡채! 매일 같이 무수한 음원이 쏟아지는데, 그 많은 곡들이 한결같이 사랑을 노래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살아가며 가슴속의 폭풍*이 이는 이유가 어디 사랑뿐일까. 아름답지 않고 어두운, 낯설고 불편해 선뜻 꺼내놓기 어려운 감정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아야만 할까. 그 물음의 끝에 바로 ‘자우림’이 있다.

*자우림 <샤이닝> 차용


자우림 정규앨범 10집 ‘자우림’ 커버

  자우림. 자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만큼 자우림의 곡들은 어딘가 어둡고 우울하다. 동시에 신비로운 건,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그 어떤 곡보다 따뜻하다는 점이다. 처음 자우림을 알게 된 건 2010년… 입시를 앞에 두고 압박감이 심하던 고3 시절이었다. 당시 야자를 하다가 우연히 김윤아의 솔로곡 ‘Going Home’이 재생됐는데, 따뜻한 가사와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홀려버리고 말았다.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 김윤아 <Going Home> 중에서

  나조차도 애써 외면했던, 모두가 똑같다는 핑계로 억누르던 마음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보듬어주는 생소한 감각. 이때 처음으로 그 사람의 이름이 김윤아라는 것과 함께 자우림 보컬임을 알게 됐고, 그날로 모든 앨범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자우림은 <매직 카펫 라이드>나 <하하하쏭> 같이 꽤나 발랄한 곡들을 부르는 밴드였는데, 앨범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그 이미지가 완전히 뒤집혔다. (정말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거였다.)


  아동학대를 주제로 한 <Violent Violet>, 학교 폭력을 다룬 <낙화>, 죽음을 이야기하는 <죽은 자들의 무도회>, 이기심을 말하는 <행복한 왕자>, 고독과 방황이 담긴 <샤이닝>까지… 때로는 담담하게 읊조리고, 때로는 처절하게 절규하고, 어떤 순간에는 유쾌하게 소리치기도 하면서 흔히 들여다보지 않는 감정과 순간들에 공감해 주는 밴드가 바로 자우림이었다. 낯선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흔치 않기 때문에 더 값지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쭉- 내 마음에는 짙은 자줏빛 물이 들어있다.


2022년 자우림 연말 콘서트 현장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다. 누구의 삶이든 깊이 들어가 보면 불가항력으로 마주한 고비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그 순간을 넘게 해주는 건 내 속을 알아주는 사람 한 명, 말 한마디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자우림의 음악이 바로 그런 존재가 되어준다. 그 누구보다 우리의 비극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봐주는 존재. ‘바람 부는 세상에 혼자 서 있다**’며 비극을 노래하는 동시에 그런 세상에서도 ‘편히 잠들 수 있기를***’ 염원해 주니, 마음에 물들 수밖에.


**자우림 <샤이닝> 차용

***자우림 <Night Wishes> 차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