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의 글.
아늑히 수많은 낮과 밤을 지낸 방이 하루아침에 낯설어졌다.
볕이 좋았던 일요일 낮이었다. 갑자기 미뤄왔던 그 일을 오늘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살며시 들어온 가을 냄새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툭. 이렇게 다가온지도 몰랐던. 그래서 더 반가운.
그 기척에 나는 아직 오지 않은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해야겠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의 침대는 큰 창문이 있는 벽 쪽에 붙어있었다. 창문 바로 아래에 놓인 탓에 겨울이 되면 찬 공기가 그대로 벽을 타고 전해져 왔다.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차디찬 시림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리고 덜덜 그렇게 까무룩 잠들게 되었다.
그토록 시리고 차가웠던 겨울을 보내도 끝내 침대를 옮기지 못했던 건, 엄청난 자리이동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방의 끝과 끝에 있는 테이블과 침대의 위치를 바꿔야 하는 정말이지 대이동이었으니까. 망설이는 사이 점점 늘어난 짐들도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으니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는 듯했다.
그래서 그 계절만 잘 견뎌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찌저찌 보내왔던 겨울이었다.
그 엄두가 갑자기 일요일 낮에 영문도 모르게 생긴 것이다.
그렇게 장장 2시간에 걸친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늘어난 짐과 부피가 큰 가구들을 옮겨야 했기 때문에 도저히 한 번에 옮길 수는 없었다. 조금씩 이동하고 자리가 생기면 짐을 옮겨서 다시 공간을 확보하고, 가구를 옮기고 공간을 확보하고 짐을 옮기고 이동하고의 반복이었다.
중간에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떻게든 끝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배치가 맘에 안 들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무색하게 가구들은 자기의 자리를 찾은 듯 딱딱 맞게 들어왔다. 배치를 끝내고 짐을 정리하고 먼지를 닦고 쓸고. 시간이 정말 사라졌다.
이사를 온 것처럼 방이 달라져있었다. 어쩌면 내 방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하리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밤 잠을 설쳤다. 같은 침대 위에 누웠는데. 언제나와 같은 천장인데.
유독 멀게 느껴지는 창문이 이상했다. 엄습하는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뒤척이는 밤이었다.
다음 날 온몸이 아팠다. 근육통 같기도 몸살 같기도 했다. 다리에는 언제 부딪혔는지 알 수 없는 멍자국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다.
몸도 마음도 욱신거렸다.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집에 들어오면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여전히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곳.
아직은 몸에 익지 않는 동선. 좋은 듯 어색하고 익숙한 듯 낯설고.
나의 공간에서 나는 갈피를 잃어 방황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멀어진 나의 공간과 다시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직은 어색한 침대 위에 기대앉아 정말 오랜만에 책을 폈다. 쫓기듯 읽어야 하는 게 아닌 정말 오롯하게 읽고 싶어서 핀 책이었다.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는 책이었다.
앉은자리에서 완독을 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문체와 호흡을 가진 책이어서 읽는 게 즐거웠고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쉬웠다. 책을 다 덮고 침대에 그대로 몸을 뉘었다. 어쩐지 행복했다.
그날, 그러니까 어제는 뒤척임 없이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의 공간은 낯설었다. 그리고 여전히 몸 컨디션도 안 좋았다.
그래, 운동을 포기하고 대신 집에서 반신욕을 하자. 따뜻한 물에 향이 좋은 입욕제를 풀어 몸을 담그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따뜻한 온기가 내 몸 곳곳 스며들어 전해진다. 향긋하고 포근한 향이 코 안 가득 맴돌았다.
행복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낀 감정 같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나에게 글은 힘들 때 쓰여지는 것이었는데, 행복함을 느낄 때 글을 쓰고 싶어 지다니.
지금 나의 공간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요일 낮의 엄두 같았다.
무엇이 나를 글 쓰고 싶게 만들었을까.
따뜻한 온기와 향긋한 입욕제의 향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와 호흡을 가진 책을 읽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바뀐 나의 공간의 풍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낯섦에 뒤척이던 밤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습하던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부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거리를.
낯설고 어색한 기척을.
예상치 못하고 당황스러운 순간을.
소소하기도 전부이기도 한 일상을.
갑작스럽게 글이 쓰고 싶어질 때를.
갑작스럽게 생긴 일요일 낮의 엄두가 불어 일으킨 작은 효과가
이렇게나 장황하게 기록될 줄은 몰랐지만. 뭐 어쩌겠어.
그저 내가 느낀
어떤 낯섦과 약간의 이상함과
아늑한 친숙함과 뜻밖의 반가움과
피어오른 행복함과 향긋한 놀라움과 포근한 묘함을
2024년 9월 24일 밤. 이렇게 남겨본다.
-
이 글을 마무리하고 나는 어제보다 친숙해진 침대 위에 몸을 기대어 책 한 권을 집어들 거야.
포근하고 안락하게 어쩌면 조금은 더 행복하게 그렇게 오늘보다 가까워진 공간에서 보다 더 편안한 잠에 빠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