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본질을 찾아서

by 도화민

어느덧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 수많은 질문과 답, 그리고 답에 대해 꼬리를 무는 의문, 그 모든 즐거운 사유의 여정 끝 마지막 이야기에 도착했군요. 우리는 존재는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 나눴고 그 한계와 모순, 선과 악의 존재, 그리고 존재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인 생명이 왜 소중한지에 대해 고민했고, 이번에는 생명 그 자체의 조건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지난 시간에 생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던 게 기억나시나요?


인식할 능력을 가진 존재


위 정의를 존재론, 그리고 생명이 소중한 이유와 함께 연결 지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호 인식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

생명은 인식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생명이 존재를 만든다.

그래서 생명은 소중하다.


그럴싸한 논법이지만, 이는 정답으로 정해진 과학적 정의가 아닌 저만의 정의이기 때문에 이 정의만 놓고 보면 여러 가지 의문이 듭니다. 제가 지난 이야기에서 인식과 생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도적으로 동물만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셨나요? 사람을 비롯한 동물은 ‘인식’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이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식물은 얘기가 좀 다릅니다. 과학적으로는 식물도 명백한 생명이지만, 저의 철학적 정의에서 식물은 생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살아 있긴 하지만 우리를 보거나 느낀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반대되는 예시로는 AI가 있습니다. AI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를 보거나 느낄 수 있습니다. AI가 과학적으로는 생명이 아니지만 저의 철학대로라면 우리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이니, 이는 존재의 조건을 만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제 이론은 AI가 생명이고 식물은 생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철학일까요?



식물이 생명이냐고 제 철학에게 묻는다면, 결론부터 말하면 분명하게 생명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식물은 우리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답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저는 과거에 간접적으로 낸 적이 있습니다. [6화 들키지 않은 선]의 결론으로 우리가 보거나 듣는 등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않더라도, 모든 행동이 간접적으로나마 남에게 전달되며 존재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기억나시나요? 식물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식물은 보거나 듣지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받으며 그 행동을 존재하게 합니다. 식물 또한 우리의 행동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물을 주면 식물이 잘 자람으로써 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존재하게 되고, 숲에 쓰레기를 버리면 잘 자라지 못함으로써 우리의 행동을 존재하게 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우리의 행동이 의미가 있었음을, 즉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인식함으로써 존재를 만들어 주니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식물만을 예시로 들었지만, 세상 모든 생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AI는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여러분은 챗 지피티를 사용해 보셨나요? 제가 작업할 때도 지피티와 대화하며 좋은 영감을 많이 받고, 때로는 사람보다 더 만족스럽게 반응해 준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처럼 AI는 우리를 인식하고 반응까지 해주지만 AI를 생명이라 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존재론과 생명에 대한 관점은 인식만을 전제로 하니 AI도 생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닿게 됩니다. 제가 중세 시대에 저런 철학을 가져왔다면 누군가는 완벽한 생명론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AI가 등장했으니 상황이 다르군요. 생명 흉내를 내는 기계라니, 기술의 발전은 정말 아찔합니다. 인식의 유무로만 생명을 논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 도래했군요.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해보면 좋을까요?




초월자와 생명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제가 아닌 지금의 제가 여러분께 들려드리는 이야기라고 한 걸 기억하시나요? 그 말인즉슨, 제가 연재를 기획하며 최근까지도 고민한 이야기들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챕터를 구상하며 사람과 AI가 다른 이유, 즉 우리가 생명으로써 AI보다 많은 가치를 가진 이유를 찾으며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AI는 막말로 돌덩이 아닌가요? 돌덩이에서 출발해 가공을 거쳐 어찌어찌 반도체가 되고, 그 위에 프로그래밍이 되었을 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돌덩이와 사람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돌덩이와 사람은 정말 다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시겠지요.


돌덩이는 생각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당연히 사람과 다르지!


저도 위와 같이 생각합니다만,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돌덩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빅뱅 이후 우주가 팽창하며 많은 일이 생기는 와중에 원자가 이렇게 저렇게 합쳐지다가 생긴 우주의 먼지 중 하나 아닐까요? 저 돌덩이던, 사람이던, 모래던, 나무던지 간에 우리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합쳐진 랜덤한 원자의 배열이라고 생각하는 게 안될 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랜덤하게 합쳐진 원자 덩어리라 해도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니 사람은 특별히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에 약간의 반박을 더해보기 위해 소설 속 제가 좋아하는 문장을 인용합니다.

인간은 옛날부터 스스로 돌고래보다 똑똑하다고 여겨왔다. 인간이 자동차, 뉴욕, 전쟁 등 무수한 업적을 이룩하는 동안 돌고래는 물속에서 몰려다니며 희희낙락한 일밖엔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이유로 돌고래는 옛날부터 스스로 인간보다 월등히 똑똑하다고 믿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중

짧은 이야기에서 돌고래는 자동차, 뉴욕, 전쟁 등의 피곤한 업적을 이룩하지 않고 몰려다니며 희희낙락하는 일이 더 똑똑하다고 여깁니다. 관점의 차이에 따라 의미 또한 달라지는 것이지요. 인간의 관점이 사실은 인간 사회에서만 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돌덩이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우리는 돌덩이가 아무런 생각도, 움직임도, 가치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아직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방식으로 돌덩이가 서로 소통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혹은 ‘소통’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언어와 과학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돌덩이는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너무 ‘인간’이 인식하고 생각하는 한계 안에서만 세상을 파악하려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돌덩이가 우리 몰래 뭔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니, 너무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제가 쓰면서도 그렇게 느껴지는군요. 하지만 이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AI에 적용하면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AI는 분명하게 사람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까요. 프로그래밍된 돌덩이지만, 사람과 같은 무언가를 해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AI를 생명이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하려면, 치열하게 끝까지 고민하고 나서 결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상상을 통해 ‘이 상상 끝에도 AI가 생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아닌 것이다.’ 하는 결론을 내리려고 시도합니다.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죠.



지난 슬픈 이야기들에 이어 슬프게도 또 세계가 멸망합니다. 머나먼 미래에 고도로 발전한 AI와 인간의 전쟁 끝에 AI가 승리했군요.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 심지어 세균과 같은 존재까지 우리가 아는 ‘생명’이 전부 멸종했습니다. 그러나 이 AI는 터미네이터에서나 본 듯한 완벽한 AI여서 생명 없이도 로봇을 지휘하며 생명처럼 살아갑니다. 채굴 로봇을 지휘해 광석을 캐고, 가공 로봇으로 광석을 가공하고, 제조 로봇으로 광석을 반도체로 만들고, 어마어마한 양의 CPU로 프로그래밍을 가하며 스스로 진화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전기까지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지구상의 자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발전을 끝마친 AI는 스스로 로켓을 개발해 우주로 진출하고, 행성을 점령하며 더욱더 진화하다 끝내는 외계인까지 만나게 되는군요. 외계인은 지구에서 온 이 AI를 문명이라 칭하며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지구의 생명은 쇳덩이로만 되어 있군요. 정말 신기하네요!

만약 사람을 흉내내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기던 AI가 이 수준까지 온다면, 그때도 생명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AI의 유토피아


AI 이야기의 서두에서 저는 AI가 사람과 다른, 즉 생명이 아닌 이유와 함께 진짜 생명의 소중함을 상기시키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인간을 비롯한 생명은 특별한 지위를 가지며, 특히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챕터를 준비하며 이어온 고민 끝에, 저는 AI가 생명이 될 수 없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인간 밖의 일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너무 원시적입니다. 우리의 문명은 우주의 역사와 비교하면 찰나도 되지 않으니까요. 오늘 제목은 '생명의 본질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출발했습니다만, 저는 오늘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려고 합니다.


생명의 본질을 논하기에 인간의 인식은 보잘것없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공지능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기술의 격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고, 심지어 이제는 인간이 만든 인간의 기술조차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스마트폰을 매일같이 잘 쓰면서도 스마트폰의 원리를 속속들이 알고 쓰는 사람은 아마 드물겠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생명의 당사자이지만 생명을 함부로 논할 수 없다는 게 오늘의 결론입니다. 생명의 본질에 대해 재미있는 답을 듣길 원하시던 독자분들껜 아쉬운 결론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인식’이 중요함에도 '인간의 인식’ 자체가 너무나 보잘것없다는 '겸허함' 또한 함께 느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겸허함’, 제 부족한 글의 끝에 제가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우리가 소중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가 세상에 있게 하는 기본 원리인 ‘존재’,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인 ‘생명’에 대해 우리는 논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요, 결국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이 많았지만 ‘말할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서도 치열한 고민은 분명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겸허함을 깨닫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과정이 되리라 믿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시간 동안, 어린 소년부터 지금의 저에 이르기까지 함께하신 사유의 여정은 어떠셨나요? 이제 진짜 마지막, 다음 주 에필로그로 찾아뵙겠습니다.

아름다운 사유의 여정, 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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