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가 아닌 평범한 아이
박혁거세 신화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유명한 이야기다. 기원전 69년 산기슭 ‘나정’이라는 우물가에 흰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는 곳을 살펴보니 자줏빛 알이 있었고, 그 알을 깨뜨리자 사내아이가 나왔다는 것이다. 알에서 나온 아이가 온몸에서 빛살을 뿜어냈고 새와 짐승은 춤추며 해와 달이 청명했는데 이 모습을 보고 ‘혁거세왕’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는 신화이다. 들을수록 믿기지 않는 박혁거세 신화와 같은 이야기는 우리 집에도 있었다.
자타 공인 영재였던 언니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고 신기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언니는 9개월부터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이야기했고 발음과 표현력이 남달랐다고 한다. 엄마가 10개월 된 언니를 업고 동네에 나갈 때면 등 뒤에서 자꾸 종알종알 거려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 아유, 요 계집애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집 담벼락 곳곳에 그려져 있던 토끼와 강아지 등의 그림은 언니가 3살 때쯤 그린 그림이었고, 덧셈과 뺄셈 곱셈 등의 계산은 5살도 되기 전에 섭렵해 가르칠 게 없었다는 게 엄마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겠지만, 난 믿었다. 내가 봐도 언니는 남달랐고 영특했다. 공부뿐만 아니라 특출한 그림 그리기 실력으로 관련 대회란 대회는 다 휩쓸어 상장이 넘쳤다. 안방 벽면은 언니가 받아온 다양한 상장들로 가득했고, 벽면에 미처 걸리지 못한 상장은 장식장 안에 가득 쌓여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청에서 주관하는 영재반 수업에 참석했다. 학교 수업을 받다가 중간에 영재반 수업에 가야 하기 때문에 기본 필기구만 챙겨 갔는데, 그때마다 내가 언니 책가방을 받으러 가곤 했다. 언니가 공부하는 교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문을 열면 안에 계시던 선생님과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그럴 때면 일주일에 한 번씩 겪는 일인데도 적응이 되지 않고 머리끝이 찌릿찌릿 서는 것 같았다. 언니 담임선생님은 언제나 친절하고 부드러우셨다. 내가 어색할까 봐 가끔씩 사탕도 주시고 수업은 잘 받았냐는 말과 함께 조심히 잘 가라는 인사도 해주셨다. 공부 잘하는 언니는 나의 자랑이고 기쁨이었다. 한 번도 언니와 나를 비교하면서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엄마는 사람은 다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게 공부가 아니라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 번도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고 성격이 모난 것도 아니니 나는 나대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시험을 치르고 성적이 나오던 날이었는데, 한 명 한 명씩 호명해서 성적을 알려주시던 선생님은 내 차례가 되자 한숨을 쉬셨다.
“너희 언니가 5학년 3반 정은이라면서?”
“네.”
“야, 그러면 너는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선생님은 메모지에 빨간색 색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95점이라고 쓰셨다.
“친구들 때리고, 부모님 말씀 안 듣고 다니는 애들만 문제아가 아니야. 공부를 못해도 문제아야.”
그날 시험에서 평균 80점을 맞은 나는 순식간에 공부 못하는 문제아가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어 보지 못한 ‘문제아’란 단어는 초등학교 4학년인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동네에서 문제아라고 불리던 언니, 오빠들을 보면 반항적인 말투와 하지 말라는 행동을 보란 듯이 골라 하는 골칫덩이였다. 내가 골칫덩이 문제아였다니 선생님의 기준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순간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바로 털어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담임선생님 외에 어느 누구도 언니와 나를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있는 그대로 나를 존중해 주었다. 5학년이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나는 너처럼 또박또박 말도 잘하고 예쁜 목소리를 가진 친구는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동시 낭송대회에 반 대표로 나가 마음껏 내 재능을 뽐내고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비록 4학년 담임선생님이 빨간색으로 강조했던 95점의 성적은 받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문제아가 아닌 평범한 아이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언니는 공부 잘하기로 유명했다. 김포시에서 제일 유명한 학원에서 원비를 내지 않고 그냥 와서 공부만 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영재가 다니는 학원이란 홍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니와 나는 정말 달랐다. 언니가 우주의 신비와 비밀을 밝히는 뉴턴 과학잡지를 읽을 때 나는 추리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언니가 대학 진학과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이렇게 우리는 달랐지만 언니는 있는 그대로 나를 아껴주고 응원해 주는 멋진 친구였다. 사춘기라는 예민한 시기에 토닥토닥 다투기도 했지만 심각하게 싸워본 기억은 없다. 가끔 나도 언니처럼 공부를 잘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똑똑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살짝 보기만 해도 정답을 알 수 있는 영재의 삶은 평범한 삶보다 행복할까 궁금해 언니에게 물어보면 “밥 먹고, 자고, 화장실 가서 볼일 보고 다 똑같지.”라고 대답했다. 심각한 내 질문에 대답은 너무 간단하다 못해 허무했다. 대답을 듣고 생각해 보니 나는 영재가 아니어도 행복했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작고 허름하지만 따뜻하게 누울 수 있는 집이 있어서 행복했다. 주위에는 언니와 나를 비교하면서 채찍질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밝고 친절한 내 성격이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면서 좋아했다. 이만하면 나는 꽤 괜찮은 사춘기를 지내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신 ‘문제아’였다면 이렇게 즐겁게 지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성적으로 나눈 ‘문제아’ 기준은 분명히 잘못된 기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