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몸매
나는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했다. 학교 운동회 연습을 하고 오는 날에는 대문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기도 하고 수시로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 체력증진을 위해 동생이 먹던 영양제를 같이 먹었는데 커다랗고 납작한 영양제는 새콤달콤한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나는 하루에 한 알이라는 정량을 무시하고 한꺼번에 몇 개씩 먹다가 하루 종일 설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체력이 약하고 가냘픈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거짓말처럼 살이 쪘다.
중학교 입학 당시 42킬로였던 몸무게는 2년 만에 68킬로가 되었다. 얼굴이 보름달처럼 부풀면서 코가 파묻히게 되고 원래 작은 눈은 더 작아졌다. 왕성한 호르몬으로 이마부터 턱까지 좁쌀 같은 여드름이 가득 찼고 피부는 울긋불긋 가을 단풍처럼 얼룩졌다. 급격한 신체의 변화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우울감을 느끼게 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넘치는 식욕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침 식사 여부와 상관없이 등교하자마자 매점으로 달려가 초코파이와 컵라면을 사 먹고 점심시간과 오후에도 간식을 먹었다. 분명히 마음속으로 절실하게 ‘이제 그만!’을 외치고 있는데 내 입속으로 음식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 체육 활동이 있는 날에는 하얀색 상의와 하늘색 체육복 바지를 입었는데, 교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놀라웠다. 몸에 끼는 하얀색 티셔츠 사이로 불룩 튀어나온 배와 옆구리, 등살 때문에 옆모습을 보면 앞뒤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팔이 굵어 어떤 옷을 입던지 팔 둘레 기준으로 입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굶기도 했다. 하루 종일 먹지 않다가 더 이상 못 참고 과식을 하게 되면 의지가 약한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거친 말로 욕을 했다. 며칠을 참다가 폭발적인 폭식을 하는 날에는 입고 있던 교복 치마허리 부분이 부푼 배의 힘 때문에 당겨지면서 스스로 접혔다. 나날이 찌는 살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친구가 방법이 있다면서 만나서 이야기해 주겠으니 본인 집에서 보자고 했다. 그 집으로 갔을 때 친구는 어른들 몰래 내 손에 작은 상자를 쥐여주면서 당부했다.
“이거 우리 엄마가 드시는 건데, 몰래 주는 거야.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건네받은 중국집 홍보용 이쑤시개 상자와 비슷한 빨간색 상자 속에는 바싹 마른 찻잎이 들어있었다.
“설명서 대로 주전자에 물 가득 넣고 찻잎 끓여서 수시로 마시면 돼. 절대 비밀이다!”
친구는 내가 집으로 갈 때까지 비밀이라는 말을 수십 번도 넘게 했다. 이렇게 귀한 걸 나에게 그냥 주다니 진정한 친구였다. 앞으로 날씬해질 내 모습을 생각하니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언니가 오기 전 찻잎을 끓이기 위해 꺼내 본 빨간색 상자에는 중국어가 가득 쓰여있고 안쪽에 한글 설명서가 있었다.
1. 적당량의 찻잎을 넣으시오.
2. 물 1리터에서 1.5리터와 함께 끓이시오.
3. 만약 복용 후 어지럼증이나 구토 증상이 있으면 바로 복용을 중단하시오.
적당량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만 넣어 끓이기로 하고 주전자와 차를 식혀서 담아놓을 콜라 페트병을 준비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물속에 찻잎을 넣고 우려내면서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나는 이제 새로 태어날 준비가 되어있었다. 페트병에 담기 전 컵에 따라 마셔본 차에서는 숙성된 녹차 맛과 특유의 향이 났다. 한 잔만 마셨는데 벌써 살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다 식히지도 않은 차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고 집중하면서 페트병에 따르고 있는 이 중요한 순간, 부모님이 오셨다.
“너 뭐 하고 있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차 마시려고.”
“차를 이렇게 많이 마셔? 무슨 차야?”
“그냥 몸에 좋은 차니까 신경 쓰지 마요.”
“수상해. 그거 뭔지 똑바로 말 안 해?”
엄마의 추궁이 계속되고 아빠는 찻잎 상자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찻잎의 냄새를 맡으셨다.
“이거 냄새도 안 좋고 중국산인데 어디서 가져온 거야? 이런 걸 왜 먹는데?”
엄마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으셨다. 나는 조용히 성공할 수 있었는데 들켜버리게 돼서 화가 났다.
“살 빼는 약이에요. 친구가 준거예요.”
“네가 이런 걸 왜 먹는데? 무슨 약인지 알지도 못하고 아무거나 왜 먹어?”
계속 다그치는 엄마에게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왜 먹긴, 살쪘으니까 먹지. 뚱뚱하니까 먹지. 엄마랑 아빠도 나보고 살 빼라고 스트레스 주잖아!”
소리치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는 충격을 받으신 듯 멍하니 서계셨다.
“엄마가 그랬잖아. 운동하면서 살 빼라라고. 적게 먹고 운동하면 되잖아.”
“엄마는 그게 쉬운 줄 알아? 그게 돼야지. 그게 안되니까 약이라도 먹으려고 하는 거지.”
엄마는 할 말을 잃은 듯 한숨을 쉬면서 아무리 그래도 위험한 약은 절대로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두 여자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던 아빠는 순간 나를 달래듯 말했다.
“너 하나도 뚱뚱하지 않아. 살 안 쪘어. 보통 몸매지, 누가 널 보고 뚱뚱하다고 해?”
맙소사, 말도 안 되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내가 믿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내 눈치를 보면서 계속 평범한 보통 몸매라고 말하는 아빠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주전자에 담겨있던 차를 싱크대에 쏟아버리고 남은 찻잎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눈물이 났다. 나는 살을 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린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아빠는 살은 굶으면서 빼는 게 아니라면서 팥빵을 쥐어주셨다. 아빠의 주름진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가만히 방 안에 앉아 속상한 마음을 달래면서 좀 전의 생각을 하니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평소에 나를 보고 “너 계속 살쪄서 어떻게 하냐.”면서 제일 많이 잔소리하던 아빠가 아까는 정색을 하면서 “너 살 안 쪘어. 보통 몸매야.”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거짓말로라도 딸을 달래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이를 드시면서 주량이 줄더니 눈물이 늘었는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히고 괜히 신경 쓰이게 하신다. 나는 ‘갱년기라서 눈물이 많아지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죄송한 마음을 슬쩍 감추었다.
이후로 부모님은 살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으셨다. 나도 스스로 폭식증을 겪지 않으려고 적당한 양을 나누어 먹는 노력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날씬해지는 해피엔딩이 되면 좋았겠지만 한동안 나는, 아빠가 말씀하신 ‘보통 몸매’로 살아갔다. 바뀐 게 있다면 폭식으로 내가 나를 학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의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집안 분위기가 바뀌고 가족 모두가 즐거워했다. 나는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 ‘보통 몸매’가 아쉬웠지만, 내가 원했던 해피엔딩보다 더 멋진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