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사슴농장 안 허름한 집에서 지내던 우리 가족이 동네 아래쪽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이사하게 된 집의 전 주인은 부모님과 가깝게 지내던 ‘장표 아저씨’였다. 아저씨에게는 아들 삼 형제가 있었는데, 큰 아들 이름인 ‘장표’를 붙여서 ‘장표 아저씨’라고 불렀다. 동네 짓궂은 몇몇 아이들은 장표가 아닌 ‘짱패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하고 ‘깡패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 장표 아저씨는 술을 마시기만 하면 나를 보고 “우리 딸 하자. 좋은 거 많이 사줄게.”라고 하면서 아들은 다 필요 없다는 술 주정을 했다. 그럴 때면 어린 마음에 정말 엄마, 아빠가 나를 아저씨 집에 보내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이사 날짜가 정해지고 우리 가족은 마음이 착잡했다. 사슴농장 주인인 서울 할머니께서 더 이상 농장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면서 정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농장이 매매되기 전까지 아빠가 집에서 농장으로 올라가 일을 하시고 내려오셨는데, 걸어서 5분 거리가 참 멀게 느껴졌다. 나는 주말이면 아침을 먹고 농장으로 올라가 바람을 쐬며 곧 사라질 그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우리가 먹고, 자고 생활하던 허름한 집은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자 음산한 바람만 가득했다. 그리고 농장에 있던 사슴들은 일주일에 두세 마리씩 짝을 지어 전국 각지의 사슴농장으로 흩어졌다. 오백 살이 넘은 위풍당당한 소나무 두 그루 밑동에는 언제부터인가 새끼줄로 엮은 북어가 걸려 있고 과일이 놓여 있기도 했다. 흉측해 보이는 북어를 떼어내면 일주일 뒤에 똑같은 모습으로 과일과 북어가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저녁마다 농장으로 올라갔던 어느 날, 나는 소나무 앞에서 흰 소복을 입고 꽹과리를 치는 여자를 보게 되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여자는 무당이었다.
“저기요! 남의 집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다 치우고 나가세요!”
사유지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 음식을 차려놓고 기도하는 여자를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얼른 다 치우고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여자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소나무를 향해 공손하게 절을 하고 잔뜩 화가 난 나에게 말했다.
“이 나무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데, 이제 없어진다니 아쉽네요.”
“네?”
“제가 아쉬운 마음에 기도를 했어요. 학생 가족을 위해서도 기도했고요.”
“기도도 좋은데 함부로 들어오지 마세요. 남의 집 소나무에 북어 걸어 놓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날이 선 내 반응에 알겠다고 돌아서던 여자는 “세상 살다 보면 아쉽고 슬픈 일이 많답니다.”라면서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화를 내는 모습 속에 슬픔을 본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여자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아주 어렸을 때도 가끔씩 기도하러 왔었지.”
어쩌면 그 여자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아끼고 사랑했던 곳을 이제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슬픔이 더 자주 발걸음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여자를 야박하게 쫓아냈던 내 행동이 후회가 됐다. 이제 몇 마리 남지 않은 사슴들이 다 떠나고 나면 농장은 영영 사라진다. 어릴 때 언니가 온갖 그림을 그려 놓은 담벼락도 무너져 없어지고 한겨울이면 바람이 들어와 코가 시리던 집도 없어진다. 친구들이 부러워하던 원두막도, 예쁜 접시와 장식품이 가득했던 방갈로도 볼 수 없게 된다. 나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몇 주가 지나고 기어코 그날이 왔다. 농장으로 올라가 마지막 정리를 하고 오신 아빠의 얼굴에는 섭섭함이 묻어났다. 마른 흙이 묻은 장갑을 ‘툭툭’ 털어내는 주름진 손은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다.
“비닐 뭉쳐 있던 거 다 털어냈어요? 흙이 잔뜩 묻었던데. 이제 창고에 남은 거 정리 끝난 거죠?”
“그렇지 뭐. 다 정리하고 가져왔지.”
바쁜 엄마의 물음에 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엄마는 잠시 아빠를 바라보다 배고프니 빨리 밥 먹자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셨다. 저녁을 먹으며 앞으로 부모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게 될지 그리고, 코앞으로 다가온 고3 언니의 입시는 어떻게 준비할지 이야기 나누었다. 다섯 명 모두 약속한 듯 농장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날 밤 마당에서 올려다본 별은 왠지 그동안 봐왔던 별 보다 반짝임이 덜 한 것 같았다.
“에이, 농장에서 보는 별이 더 예쁘네.”
괜히 아무 잘못 없는 별에게 시비를 걸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마당 한쪽에 세워져 있는 경운기가 보였다. 경운기를 보자마자 빙그레 웃음이 났다. 반가운 마음에 손잡이도 잡아당겨보고, 운전석에 앉아 몸을 들썩이니 경운기도 신이 난 듯 따라서 들썩거렸다.
‘그래,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걸레를 들고 나와 경운기의 얼굴을 말끔하게 씻겨주니 밤중인데도 별처럼 반짝거렸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사슴농장은 매매가 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되었다. 아름다운 나무와 꽃이 피어있던 곳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살던 집은 흉가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곳이 좋았다. 마음이 답답할 때 올라가 바람을 쐬고 오면 머릿속에 잡념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시간이 지나 모습이 바뀌어도 농장은 나에게 소중한 곳이었다. 아빠는 새로운 일을 하셔도 언제나 경운기와 함께였다. 풀을 베어 실어 오던 뒷자리에는 새로운 물건들이 실렸고 여전히 존재감을 뽐냈다. 나는 가끔 흐뭇한 미소와 함께 경운기를 두드리며 생각했다.
‘오래오래 함께 하자’
사슴농장은 사라졌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경운기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