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빠와 늙어가는 딸 그리고 녹슨 경운기
시간은 모든 것을 추억으로 남기라고 재촉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시간은 정말 빨리 흘러갔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던 나는 엄마의 설득으로 인천에 위치한 전문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엄마의 끈질긴 설득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학비를 내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장학금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매번 좋은 학점을 받았다. 안정된 직장의 사무직 사원을 꿈꾸며 졸업을 앞둔 97년 하반기.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꿈꾸던 달콤한 시간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IMF 외환위기로 대량실업이 일어나고 기업은 도미노처럼 줄지어 도산했기 때문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일자리를 잃거나 파산한 사람들의 자살 소식이 이어졌다.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야 할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정규직 일자리는 전쟁 같은 취업대란 속에서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있었고 그 자리마저도 찾기 어려웠다. 나는 졸업식 두 달 전부터 부지런히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분야로 취업 준비를 하려던 내 계획은 IMF 앞에서 사치였다. 내 몸 하나 들어가 일할 곳이면 충분했지만 그 한자리 찾기가 고난도 숨은 그림 찾기보다 어려웠다.
비참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일 때쯤 종로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길, 건물 벽면에 붙어있던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그날따라 평소에 잘 보지 않던 벽면을 보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포스터에는 “인형극 단원 아르바이트생 모집, 시간 활용 가능, 사무실 마포구”라는 간략한 내용과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인형극’이란 단어는 나에게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날 찾아간 인형극 사무실은 곰팡이 냄새가 나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다. 나는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인형극 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자마자 귀신에 홀린 듯 “출근하겠습니다!”를 외쳤다. 아르바이트 조건은 일주일에 3번 출근해서 인형 정리와 어린이집 방문 인형극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지만 왠지 끌렸다. 집으로 돌아와 “나 취업했어요! 아르바이트!” 외치자 엄마, 아빠는 장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마포면 일찍 일어나서 가야 되는데 괜찮겠어?”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떨어져 앉아 계시던 아빠도 대화를 들으며 슬쩍 미소 지으셨다. 그 미소를 보자 순간 코 끝이 찡해졌다. 모자를 벗고 살짝 벗어진 이마를 쓰다듬는 아빠의 손도, 미소 짓는 얼굴과 그 아래 목도 모두 주름으로 덮여있었다. ‘아빠가 이렇게 늙으셨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아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뭐야, 우리 아빠 왜 이렇게 늙었어! 이제 진짜 할아버지 다 됐다.”
“별소리를 다하네. 나는 너희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였는데 뭘.”
“생각해 보니까 나도 점점 늙어가는 거네.”
“벌써 늙는다고 하면 어쩌냐. 너는 이제 시작인데.”
출근을 앞둔 그날 밤은 오랜만에 부모님 앞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겁게 재잘거렸다.
인형극 아르바이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고, 힘들었다.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 하는 육체노동과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을 상대해야 하는 정신노동의 결합체였다. 3개월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고 단원은 어느새 7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단원이 충원되면서 어깨의 무거움이 덜어지는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왔다. 경제적인 부담과 단장의 개인 사정이 맞물려 더 이상 극단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단원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5개월이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고 이렇게 빨리 일을 그만두게 될 줄 예상 못 했기에 충격이 컸다. 마지막 출근일, 단장은 하루 종일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뒤늦게 돌아와 퇴근하려는 나를 급하게 불렀다.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살리고 싶다.”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하게 쳐다보는 나에게 단장은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형님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한 인형극회를 운영하셔. 그 형님에게 네 이야기를 했더니 KBS 어린이 프로그램 인형극 팀 자리로 들어오라는데, 어때? 네가 좋다고 하면 바로 출근할 수 있어.”
비록 비정규직이었지만, 지금보다 좋은 환경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자리임은 분명했다. 나는 단장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면서 극단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미지급된 48만 원은 과감하게 잊어버리기로 했다. 과거는 잊고 앞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새로운 인형극 팀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경력이 30년이 넘은 단원부터 1년 된 단원까지 ‘시어머니’가 족히 열 명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형제작팀과 의상팀, 소품팀까지 나에게는 모두가 하늘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 KBS 방송국으로 들어가 ‘혼자서도 잘해요’와 ‘TV 유치원 하나, 둘, 셋’을 녹화하는 날은 영과 육체가 따로 노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선배들의 잔심부름을 하고, 손인형 바느질이 터지거나 손이 떨어지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항상 수리 도구를 준비해야 했다. 탈인형을 쓰고 연기하는 날은 세트장 조명과 탈인형의 두꺼운 스펀지 때문에 하루 종일 땀에 젖어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과거 밭일에 시달렸던 엄마와 힘든 농장 일로 아빠의 몸을 적셨던 땀 냄새와 닮아있었다.
시간은 바쁘게 흐르고 세상은 하루하루 달라졌다. 잠시 뒤돌아 보았을 때 사람들도 변해있었다. 방송국 세트장을 누비며 “안녕하세요! 한 달 전 데뷔한 신인 걸그룹입니다!” 외치던 가수들은 어느새 가요프로 1위 인기가수가 돼있었다. 처음 방송국으로 출근했을 때 내 인사를 받지 않았던 선배들은 내가 살짝 코만 훌쩍거려도 “감기 걸렸니?” 물어주는 자상한 선배가 되었다.
바쁘게 지나는 시간을 따라 사람들만 바뀐 것은 아니었다. 휴일 아침, 아빠와 함께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경운기도 바뀌어 있었다. 한동안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경운기도 많이 늙어 있었다. 여기저기 검버섯처럼 피어오른 녹은 걸레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고 짐을 싣고 다니는 뒷자리는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었다.
‘우리 같이 늙어가는구나.'
닦아도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경운기의 얼굴과 목감기에 걸린 듯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는 세월을 짐작게 했다. 야속하지만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은 모든 것을 추억으로 남기라고 다그치듯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