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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Feb 25. 2023

딸에게 노트북을 물려받았다


2kg이 훨씬 넘는 까만색 노트북에 후후~ 입김을 불어 휴지로 닦아본다. 생활흠집이 가득하지만 앞으로 3년은 너끈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무겁고 조금은 투박한 이 노트북은 딸아이의 고등학교 생활을 함께 한 귀한 노트북이다. 이 귀한 노트북을 내가 물려받았다.


좋은 노트북까지는 필요 없다는 내 말에 그래도 저렴한 새 노트북이 낫지 않냐고 미안해하던 딸아이. 딸이 나에게 미안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딸이 원하던 하얗고 가벼운 노트북 보다 저렴하단 이유로 까맣고 무거운 노트북을 사줬던 내가 미안하다.

3년 내내 얼마나 무거웠을까...


한 마디 칭얼거림도 없이 대학 입학 할 때 더 좋은 것으로 사면된다고 했던 아이. 하얀 노트북 보다 더 예쁜 마음을 가진 나의 딸. 


그런 딸의 대학입학을 앞두고 드디어 새 노트북을 주문했다. 딸이 원한대로 하얀색에 1kg대의 전보다 훨씬 가벼운 노트북이었지만 최신형 노트북은 아니었다. 엄마 마음이야 최신 제품을 사주고 싶지만 막상 가격이 너무 사악했다. 


"와, 노트북이 200만 원대에서 300만 원이라고?"

열심히 노트북을 검색하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버린 말을 딸이 들었나 보다. 그렇게 까지 비싼 건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제품을 친절하게 찾아서 보여준다. 


"졸업하고 취업해서 돈 벌면 더 좋은 걸로 사면되죠!"

미안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린 한 마디가 이렇게 힘이 되다니...


함박눈처럼 하얀 노트북.

노트북이 드디어 도착했다. 딸은 포장을 뜯고 예쁘다를 연발하며 한 손으로 노트북을 번쩍 들어본다. 기존 노트북으로는 상상도 못 할 한 손 들기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아할까 싶으면서도 딸아이의 웃음에 나도 환한 웃음이 나온다. 


'이제 이 녀석은 내 거구나~"

무겁고 까만 녀석의 전원을 켰다.

바탕화면에 딸아이가 만들어 놓은 폴더들이 보인다.

발표, 과제, 사진, 세특자료 등의 폴더들이 딸의 3년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을 보여준다. 


'흠... 이제 어떤 폴더를 만들게 되려나...'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동안 화면 큰 PC를 사용하다 보니 아무리 투박한 노트북이라도 아기자기하게 보인다. 딸아이가 물려준 노트북을 꼼꼼하게 닦고 첫 글을 써본다.

새것이 아니라도 내 것이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기숙사 가져갈 짐을 정리하던 딸이 말한다.

"엄마! 나 취업하면 엄마한테 하얗고 가벼운 노트북 사줄 거야~"


 앗싸라비~~~ 소리질뤄어어!!!!


딸이 노트북을 사준다고 한다.

딸아이는 약속은 꼭 지키는 스타일이라 빈말이 아니다.

방금까지 그까짓 거 무거우면 어떠냐, 투박하면 어떠냐, 용량이 적으면 어떠냐...

어떠냐를 무한 반복하며 만족해했던 나인데 바로 물욕의 노예가 된다.

바싹 마른 겨울 가랑잎 보다 가볍게 팔랑거리는 마음이라니...


호떡 보다 더 잘 뒤집히는 마음이지만 어쨌든 이왕이면 하얗고 가벼운 노트북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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