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미쳐라
햇살과 바람이 적절하게 좋았던 날인데, 망나니 A와 마주치다니, 운이 없었다.
산책을 나가자고 조르는 똥꼬 발랄 보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들어오는 길. 보리가 큰 볼일을 준비하는 자세를 취했다. 일을 끝낸 강아지를 닦아주고 쭈그리고 앉아 배변 봉투에 처리하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망나니 A가 팔짱을 끼고 능글거리며 말한다.
"아니, 똥을 싸면 어떻게 해. 저기 공원에 현수막도 있는데. 강아지 똥 못 싸게 하라고."
그런 현수막을 본일이 없다.
공원에 있던 현수막은 '반려동물의 배설물을 잘 치워라, 치우지 않으면 벌금 내야 한다'라는 견주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매너에 대해 적혀 있는 현수막이었다.
짧은 찰나의 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쳤다. 처리를 잘하고 있는데 이런 소리를 한다는 건 분명히 시비를 거는 것이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망나니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잘 치우고 있는데 웬 시비?"
일단, 가볍고 짧게 받아쳤다.
평소 얌전한 내 모습만 봐왔던 망나니가 살짝 당황하는 게 느껴진다.
"저기 쓰여있잖아. 똥 싸지 말라고."
억지를 부리는 망나니가 꼴 보기 싫고 속이 부글거린다.
"혹시... 난독증? 아니면 이해력이 부족한가..."
"그게 아니고 저기 그렇게 써있..."
망나니의 말이 끝나기 전에 보리를 보고 쉬지 않고 말했다.
"보리야~ 이제 우리 보리 똥X 막고 다녀야 되나 보다. 테이프로 막아야 하나 아님 스티커로 막아야 하나? 이렇게 잘 치우는데도 시비를 걸고 괴롭히니 살 수가 없다. 그치? 아! 맞다! 경찰 아저씨한테 물어봐야겠다. 우리 보리 잘 싸고 잘 치우는데 응가하면 안 되는 거예요 하고 물어보자. 우리 경찰 아저씨한테 응가하고 예쁘게 치웠는데 무서운 아저씨가 시비 걸어요~ 무서워요~ 하고 말하자!"
끊임없는 내 중얼거림에 망나니가 팔짱을 풀고 나를 쏘아본다.
그까짓 거 못 본척하고 물티슈 뚜껑을 닫고 보리를 품에 안아 집으로 가는 내내 중얼거렸다.
"이상한 사람이야. 그치? 우리 보리 밖에서 응가해도 돼. 안 치울 때 혼나야 되는 거지 잘 치우면 괜찮은 거야. 아저씨 목소리 듣기 싫으니까 귀 막을까용~?"
뒤에서 망나니가 작은 소리로 "이 미친..."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릴 때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섰다.
망나니야 잘 봐!
나도 이 구역의 미친X이 될 수 있다 이거야!
가슴은 미칠 듯 콩닥거렸지만 속이 시원했다.
그냥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이 일 이후로 망나니는 나를 보면 자기가 먼저 모른 척하는 것 같다.
사실 내 신경을 제일 날카롭게 만드는 망나니는 따로 있다. 10년이 넘도록 줄 담배를 피우는 아랫집 망나니다. 그날은 어디서 무슨 용기가 났는지 욕쟁이 망나니는 대충 처리했는데, 줄담배 망나니는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 설 연휴에 아랫집에서 막무가내로 보내온 배가 김치 냉장고에 남아있다. 어째 썩지도 않는지. 오늘 남은 배를 봉투에 담아 버렸다. 배는 시원하게 버렸지만 아랫집 망나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다. 참 풀기 어려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