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있는 곳에 이런 망나니 한 명쯤은 기본?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망나니 A가 살고 있다.
A는 40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특별한 직업이 없는 듯 보인다. 그는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항상 뿔테 안경에 면마지와 점퍼를 입고 다닌다. 예상컨대 우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를 망나니가 아닌 개망나니로 부르기를 더 원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든다.
일단, 망나니 A를 소개하자면...
하나!
A는 박스를 주으러 다닌다.
그는 어머니와 다닐 때도 있고 혼자 다닐 때도 있는데 주워온 박스를 항상 사람들이 출입하는 아파트 작은 문옆쪽에 쌓아놓는다. 통행에 방해가 되고 보기도 좋지 않다. 살림이 어려운 것도 아닌 40대 후반의 남자는 박스광이다. 이전부터 생계를 위해 박스를 모았던 노인들을 몰아내고 본인이 아파트 주변 상가의 박스를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내 재활용 공간에 가져다 놓은 박스까지 본인이 가져가 팔아버린다.
둘!
A는 멀쩡히 있는 주차 자리에 주차하지 않고 본인이 꼴리는(?) 대로 아무 데나 주차한다. 특히 아파트 앞 유모차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 옆에 가로본능으로 주차한다. 면적이 크지도 않은 지상 주차장에 다른 차가 주차하거나 나가려고 하면 회전 각도가 나오지 않아 여간 애를 먹는 것이 아니다.
셋!
A는 욕에 진심이다.
아파트 청소를 20년간 맡아오신 청소원 아주머니의 박스 좀 치워달라는 한 마디에 냅다 욕을 날린다.
씨X녀ㄴ, 나가 뒈X녀ㄴ 등은 기본이고 비아냥 거리며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네 엄마랑 동갑이야 라는 청소원 아주머니의 울먹임에
"그래~ 잘났다. 그 나이 먹어서 청소나 하냐?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뭘 치워라 말아라야!"라는 패드립의 비수를 꽂는다.
어느 날은 자신이 모아 놓은 박스를 몰래 가져갔다면서 80세가 넘은 할머니를 공격했다.
"가져와라. 이 썅X아! 도둑X이 내 박스를 가져가?
"내가 뭘 가져가냐 이놈아! 어휴, 어쩜 이리 짐승만도 못한 놈이 있나..."
억울함과 분노에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래. 나 짐승이다. 월월~ 나 개다 개!"
"넌 개만도 못한 놈이지. 이놈아! 이 썩을 놈아!"
할머니는 가슴이 많이 떨리셨는지 한쪽 가슴을 잡고 얼굴이 벌게지셨다. 내가 네 엄마 보다 나이가 더 많은 노인인데 라는 할머니의 말에 망나니 A는 그만큼 나이 먹고 뭐 했냐면서 죽으라는 폭언을 한다.
넷!
A는 하는 행동만큼 패션센스도 망나니다.
넓적하고 까만 얼굴에 맞지 않는 하얗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닌다. 한 번씩 검은 뿔테로 쓰기도 하는데 흰색을 쓰고 다닐 땐 정말... 뒷말은 생략해야겠다.
다섯!
이건 정말 놀라웠는데...
A는 망나니면서 교회 집사다.
일요일이 되면 감리교 교회 봉고차를 운전해서 사람들을 태우고 다닌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그냥 신앙생활하는 망나니로 불러야겠다.
그런데 A는 교회에 가서 무슨 기도를 할까?
개인적으로 굉장히 궁금한 점이다.
딸아이는 A를 망나니로 부르지 말라고 한다.
망나니는 나라에서 중죄를 지은 죄인 중에 뽑은 사람이긴 하지만 엄연히 나라의 부름을 받아 공적인 일을 하는, 어떻게 보면 '공무원'인데 왜 그런 사람을 망나니로 부르냐면서 열변을 토한다. 망나니로 부르기도 아깝다고 한다.
오~~~~ 멋있어!
나는 한 번도 망나니가 공무원이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딸의 논리에 감탄사가 나온다.
지난 지방선거 때, 친형이 몰고 온 후보자의 얼굴과 기호가 찍힌 선거운동 차량에서 박카스를 꺼내 마시는 것은 물론 열 박스가 넘게 꺼내 집으로 가지고 가던 A.
선거운동 아르바이트생들을 위한 음료였을 텐데, 아무런 죄책감도 부끄러움도 없이 얼굴 가득 실실거리면서 음료수를 가져가던 그 얼굴이 기억날 때면 불쑥 화가 난다.
이렇게 슬쩍 마주쳐도 기분이 좋지 않은 A인데, 어느 날 내가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와 내가 이렇게 일대일로 대면하게 될 줄이야... 그날은 내 운이 그리 좋지 않은 날이었나 보다.
글이 길어지는 것 같아 2편으로 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