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를 위해
힘없는 목소리로 그녀가 전화했습니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 병원에 갔더니 가슴에 쌀알 만한 염증이 있더랍니다. 염증을 빼내고 꿰맨 자리가 아픈 것보다 그 쌀알의 정확한 정체를 밝히기 위한 조직검사의 결과가 더 무서웠던 그녀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는 검사이고 육안으로 보기에 일반 염증이라고 말했다지만 그녀의 불안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나이 팔십을 넘어가는 그녀지만, 그까짓 거 이제 그냥 죽어도 상관없지 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그녀지만, 정작 작은 쌀알 만한 염증에 덜덜 떠는 하염없이 나약한 그녀입니다.
자꾸 힘없는 그녀의 목소리에 불쑥 짜증이 납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벌벌 떠는지...
아기처럼 어르고 달래다가 짜증으로 마무리 한 통화였습니다.
그녀와 통화할 때 가끔씩 이렇게 마무리가 되곤 합니다.
나중에 후회하지만 계속 들어주기엔, 무조건 다 받아주기엔 버거운 그녀.
너무 힘들게 살아왔고, 억울한 것이 많기에 안부를 묻고, 하루에 있었던 일을 나누는 평범한 대화가 그녀의 한탄으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지겨운 법인데, 그녀의 한 맺힌 절규, 흐느낌을 한 시간 이상 듣는 날엔 제 영혼이 날아가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똑똑하고 야무진 그녀이기에 그 험한 세월을 지나 이나마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맞습니다.
그녀가 태어난 1940년대, 그리고 그녀가 살아온 그 이후의 시대, 그 시대에는 모두가 그랬노라고 모두가 힘들게 살았노라고 유난 떨지 말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를 일이네요.
하지만, 그녀는 그 시대에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분명히 더 안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부잣집 손녀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술과 도박으로 전 재산과 명예를 날리고 10살 되던 해부터 부모님과 동생 다섯 명을 먹여 살린 장녀.
이른 나이 친정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직업 군인과 결혼했지만 임신 중 남편의 폭력과 바람기, 시어머니의 악독에 말라갔던 그녀.
빨간 입술을 바르고 화려한 한복을 입고 찾아온 술집 작부에게 아내의 자리를 빼앗기고 젖먹이 딸아이와 생이별을 하고 가슴에 돌덩이를 담고 살게 된 그녀.
가진 거 하나 없이 공사판을 전전하던 술주정뱅이와 두 번째 결혼으로 세 아이를 낳게 된 그녀.
태어난 지 6개월 된 딸을 업은 채 남편이 뿌린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가녀린 팔로 받아내어 살이 녹아내린 그녀.
두고 나온 젖먹이 딸아이에 대한 그림움과 미안함을 꾹꾹 뱃속까지 밀어 넣고 또 다른 세 아이를 위해 자기의 인생을 희생한 그녀.
아직도 본인을 존중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분노로 자식들에게 한 번만 더 자기를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그녀.
그녀의 삶 속에 행복은 있기나 했었을까요?
한없이 그녀의 삶이 가여우면서도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쌀알만 한 염증에도 죽을 날을 받아 놓은 것처럼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내가 더 그녀를 알아주고 안아주어야겠다고...
감히 그녀가 겪어 온 그 삶을 다 알 순 없지만 그녀를 영원히 남겨 놓고 싶습니다.
제가 그녀를 기록해도 될까요?
내 곁에 없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힐 듯 괴로워지는 존재인 그녀, 우리 엄마.
그녀를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