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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꽃 Feb 18. 2023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요?

고객님의 삼품이 배송되었습니다


배송 예정 날짜 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다.

5월에 군대 가는 아들의 채소, 야채 좀 먹어야겠다는 말에 냉큼 봄동과 포항초, 약콩나물을 주문했었다. 두 달 후면 훈련소로 가는 아들을 생각하니 원하는 대로 먹이자는 생각으로 리뷰가 좋은 것으로만 골랐다.


두 아이가 모두 좋아하는 봄동의 푸른 잎이 참 싱그럽다. 고춧가루와 짭짤한 액젓을 섞어 봄동 무침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침이 고인다.

"와! 내가 좋아하는 봄동! 포항초도 있네~"

딸아이의 신나는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엄마 엄청 바쁘다. 봄동이랑 포항초, 콩나물 다 무쳐야 돼."

괜히 딸에게 생색을 내본다.

파란 싱그러운 봄냄새를 풍기는 봄동을 살펴보는데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저기엔 뭐가 들어 있어요?"

아직 뜯지 않은 택배 박스를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아~ 그건 내 거!"

박스를 뜯어 하얗고 날씬한 다리를 자랑하는 쪽파를 자랑해 본다.



딸아이는 쪽파를 이렇게 많이 샀냐며 놀란 눈치다. 쪽파 1kg을 주문했는데 두툼한 한 단의 쪽파가 참 실하고 맛있어 보였다.

"쪽파김치 만들 거야~ 내가 파김치 좋아하잖아."

며칠 전부터 파김치가 너무 먹고 싶었다. 가족 중 파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조금만 사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나를 위해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엄마, 파김치는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요?"

이 물음은 다른 반찬이 없어도 맹물에 흰밥을 말아 신김치를 척척 얹어 드시던 엄마에게 어린 내가 했던 질문이었는데...

파김치는 매력적이고 톡톡 튀는 그런 맛이 있단다 딸아!

아직 파김치의 맛을 모르는 귀여운 애송이! 훗!


달고 고소해야만 맛있는 것이 아니라 알싸하고 쌉쌀한 맛도 못지않게 매력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파김치!

따듯한 흰밥에 쓱 얹어 먹어도, 김이 폴폴 나는 라면에 싸 먹어도 맛있는 파김치!

함께 먹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짭짤한 반찬이 되어 줄 것이다. 


결혼생활 23년 만에 처음이다.

나만을 위한 음식 만들기가.

항상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가족이 좋아하면 만들어 왔던 반찬들이 생각난다.

이제 이 나이쯤 되었으면 나만을 위한 만찬을 내가 만들어 줄 때가 된 것 같다.

액젓 냄새가 너무 독하다는 아들의 말도 가볍게 넘겨준다.

오로지 내 입맛에 맞는, 나만을 위한 파김치에 집중해 본다.

파김치의 푸릇푸릇한 머리와 하얀 다리에 듬뿍 뭍은 빨간 양념이 보기만 해도 감동이다.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어요?"


파김치의 맛을 알게 되는 때는 인생의 단맛, 신맛, 짠맛 모두 느껴 본 후에만 알 수 있는 그런 맛이라고 거창하게 대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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