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마치 피고름 같았다
내가 살던 시골 동네는 사계절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교통의 불편함과 문화생활을 즐기기 힘들 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자연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우리 동네는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었는데 마을에는 포도밭과 논, 고추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특히 포도를 수확하는 시기에는 누구네 포도밭 할 것 없이 마음대로 들어가 배가 터지기 전까지 포도를 따먹었다. 어른들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앉아서 천천히 많이 먹어라” 하면서 송이가 굵은 포도를 골라 따주셨다.
인심 좋은 우리 동네에서 30분을 걸어 나가면 가장 큰 번화가가 있었고 그곳에 내가 다니던 학교와 여러 기관들이 있었다. 번화가라고 해도 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작은 곳이 었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시내의 가장 위쪽에는 성당이 있었는데 성당은 정말 기품 있고 독특했다. 일반 건물과는 달리 여러 조각상이 있었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그려진 그림으로 덮인 창문은 알록달록 화려했다. 성당의 크기도 그리 작지 않은 규모여서 시내 어느 방향에서도 잘 보였다. 동네에 있는 절도 울긋불긋 화려 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성당은 뭔가 절제된 세련미와 우아한 분위기였다. 나는 성당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계신 외국인 신부님이 연세가 많아 다른 신부님으로 바뀔 거 같다는 등의 소소한 소식들은 친구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성당에서 여름철에 아이들을 위한 초대 파티를 할 때면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초대장을 돌리기도 했다. 나는 매년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받아도 거절했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초대를 했던 6학년 여름 그 날은 처음으로 꼭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친한 친구의 부탁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곳에 있는 피아노를 만져 볼 수 있다는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파티 당일 친구들과 성당에서 간식을 먹고 마당에서 뛰어놀기도 하고 꼭 보고 싶던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건반도 만져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악몽은 이틀 후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나를 보는 몇몇 아이들의 눈치가 이상하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을 때 같은 반 친구가 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미애가 그러는데, 네가 성당에서 돈 훔쳤다고 하더라.”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지 황당하고 억울해서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특히 학교에 모든 아이들이 나를 도둑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수업 후 집으로 갔을 땐 이미 엄마도 내가 돈을 훔쳤다고 알고 계셨다.
“너 미애 돈 훔쳤어?”
“아니야. 난 그런 적 없어.”
“그런데 왜 미애네 엄마가 그런 소리 하는데? 너 정말 아니야?”
계속 아니라고 하는 내 말은 듣지 않은 채 엄마는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픈 것보다 억울함에 몸이 떨렸다. 매를 맞은 곳은 파랗다 못해 검은빛이 날 정도로 심하게 멍이 들고 부어올랐다. 나를 도둑으로 몰아버린 아이들도 미웠지만 그것보다 나를 믿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난 훔치지 않았다고 해도 엄마조차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현실이 나를 절망하게 했다. 언니는 나를 토닥이며 믿는다고 했지만, 그 말이 딱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의 시간은 일 분 일초가 답답하고, 억울함에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 속에 주말이 되었는데, 성당에 같이 갔던 친구 중 한 명이 불쑥 찾아와 그날에 대해 고백했다.
“사실은, 미애가 돈 다 쓰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네가 훔쳐갔다고 거짓말한 거야.”
난 내 결백이 밝혀지면 야호 소리치며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담담하고 차분해졌다. 그냥 몸속의 모든 힘이 쑥 빠지는 느낌이었다. 진실을 말해준 친구에게 고맙다면서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오후가 될 때까지 별 반응이 없으셨다. 나는 엄마에게 감정이 상한 상태라 눈도 마주치기 싫었고. 제대로 된 사과를 받기 전에는 절대로 한마디도 안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일단 억울함이 풀려 편안한 마음으로 원두막에 올라가 미애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이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누나, 엄마가 아까 큰 회초리 들고나갔어.”
순간, 나는 미애가 떠올랐다. 허겁지겁 달려가 보니 엄마는 미애네 집 마당에서 회초리를 들고 소리를 지르고 계셨고 미애네 엄마는 안절부절못하면서 한 번만 봐달라며 빌고 있었다.
“미애 나오라고 해! 누굴 도둑으로 몰아!”
“아이고, 형님.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어디 있냐고! 나와! 빨리 나와! 나와!”
엄마는 평소에 내가 알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억울함과 화가 뒤섞인 욕과 고함소리는 마치 상처 받은 짐승의 포효 같기도 했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에 놀라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사건에 대해 몰랐던 미애네 아빠는 시퍼렇게 멍이 든 내 무릎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착잡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미애 부모님의 사과에도 가라앉지 않던 엄마의 화는 내가 떨리는 엄마의 손을 잡았을 때야 멈췄다.
“엄마, 이제 됐어요. 우리, 집에 가요.”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집으로 오면서 빨갛게 물든 엄마의 작은 눈 속엔 나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와 자책, 억울함이 가득 섞여 있었다. 굳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해가 저무는 우리 동네의 노을은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그 날의 노을은 엄마의 아픈 가슴에서 터져 나온 피고름처럼 보였다.
부부 사이에 싸움은 물 베기라고 하는데, 모녀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금방 평온해졌고, 오히려 나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엄마는 내가 커서도 생각날 때마다 그날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때마다 맞아서 멍이 들었던 내 무릎을 만지셨다. “네가 철이 일찍 들고 착해서 그때 그냥 집으로 오자고 했지. 억울해도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나중에 미애가 미안해서 너 피해 다녔잖아.” 그래, 엄마는 이렇게 알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 그날, 엄마의 흥분하신 모습을 보고 놀랐을 때 미닫이 문틈 사이로 나보다 더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미애의 얼굴을 보았다. 쌍꺼풀진 큰 한쪽 눈과 당황해서 엄지 손가락을 뜯던 입술을. 나와 눈이 마주친 겁먹은 미애의 모습을 보니 이 정도면 됐다 싶어 조용히 나만의 경고를 했다. 오른쪽 손을 살짝 올려 주먹을 쥐고 흔들면서 최대한 무서운 표정으로 미애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제 알겠지?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 보니 어른들은 몰랐던 그날의 나의 경고가 미애에게는 잘 전달되었던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