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통조림처럼
대학 시절, 말 그대로 함께 울고 웃던 친구와 30대가 되어 ‘멀어졌다.’ 단순히 멀어진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받아서.
<중경삼림>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이 나오며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 묻는다.
나도 묻고 싶다.
우정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질문 아니겠나
함께 했던 찬란한 청춘의 우정은 그때라서, 아름다웠고 고마운 것에 머무르면 되는 것 같다.
그게 현재까지 동일하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변했다.
상대방의 기쁨에 함께 웃어줄 수 없고 슬픔에 눈물 흘려줄 수 없게 되었다.
억지로 우걱우걱 기도해 보아도 달라지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마주치는 것도, 청첩장 모임에서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솔직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너의 모습과, 애써 웃는 나의 모습이 다 싫었다.
서로에 대해서 궁금하지도 않고, 축하하지도 않는, 회사 사람만도 못한 관계.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콜백도 없던 너를 나는 왜 끝까지 미련을 두었었을까? 그걸 미련하다고 하나 보다.
나는 10인데 상대방은 1인 우정
이번 일에 대해서도 내가 얘기를 꺼내려할 때
‘알 빠야?’라고 대답하는 너를 보고 깨달았다.
아, 이제는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끈이 끊어진 것 같았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관계에 미련을 두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안녕히, 잘 가기를.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지 않는데 그런 직업을 가진 너의 아이러니함을 네가 돌아볼 수 있기를.
나는 이 친구를 잃는 이 사건을 통해서,
많은 관계들을 정리하고, 반대로 다른 소중한 관계들을 깨달았다.
사실은 이 친구의 말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던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도 놀랐지만, 내 마음은 그제야 평온함이 있었다. 원래 너라는 사람을 좋게 보려던 내 모습을 탈피하려고.
나의 선택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안정감
난 그동안 미련 없이 안녕을 외치지 못했는데, 너는 이미 나에게 서서히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내가 몰랐다.
스물한 살 때 같이 울어줘서 고마워. 그 기억으로 평생 너에게 잘하고 싶었어.
그렇지만 우정이라는 단단하고 팽팽히 당겨지는 줄이 아닌걸 이제 알았어.
상대방이 이미 놓아버린 끈을 잡고 힘 빠져하는 것도 웃긴 광경이더라.
어쩌면 나는 너처럼 유연하지 못해서, 너무나 심각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과 친구를 유지하지 못해서,
상처를 받은 친구 곁에 있어야만 했어서, 너처럼 중립을 지키지 못해서, 다 잃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친구, 매일 아무렇지 않게 전화걸 수 있는 친구, 너랑 보낸 세월이 길어도 나의 진심을 알아준 친구가 있단 걸 깨달았어.
그러니까 고마워. 진짜 관계는 어떤 건지 알게 해 줘서 고마워.
진짜 관계는
1. 솔직할 수 있고
2. 일상이 궁금하고
3. 곁에 있어주는
관계라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
네가 ‘바람피운 놈 때문에 힘들더라도, 가장 친한 친구가 걔랑 잘 지내는’ 정도의 마음을 언젠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떠나보내버린 관계에 대한 무거운 마음과 죄책감과 힘듦도 느끼면 좋겠어.
너는 노력하는데 점점 멀어지는 관계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쉽게 회피하지 않고 쉽게 버리지 않고 쉽게 아무렇지 않게 대하지 않으면 좋겠어.
부디 안녕하고 앞으로도 인사만 하자. 지금처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