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by 도자기로드
나의 이야기, 나의 간증_ 두번째이야기



> 1편에서 이어집니다.


아는 사람 하나없는 런던으로 유학을 홀로 간 뒤, 매일매일이 은혜였습니다.

기적같은 일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에피소드가 참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감사한 일은 성령충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런던에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택한 길이 힘들어서 울며 교회 수련회에서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사명’이라는 단어를 제 마음속에 깊에 새겨놓아주셨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처음 경험한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고, 기도하는 저녁시간 내내 하나님의 음성이 내 안에 가득차있음을 느꼈습니다. 엄마는 불교집안 장남에게 시집와서 첫째, 둘째를 모두 딸을 낳고 셋째까지 또 딸을 나아서 수술을 하며 하나님께 왜 아들을 주시지 않느냐고 기도했다던데,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 또 나아도 딸이느리라" 우상숭배하는 집안에서 장남의 장남은 제사를 물려받아야하기에, 그제서야 엄마는 이해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임재가 저에게도 온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후 ‘비전’과 ‘진로'는 다른 것이며, 우리 모두의 비전은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면서도 교회다닌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동성애, PC주의 등이 당연한 곳에서 저는 제 자리, 삶으로써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대학원에서 한인 크리스천 모임을 가지고 매주 월요일 아침 학교식당 한구석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기 하였습니다.


매달 한국에서 생활비가 오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저는 런던에서 늘 생활고에 시달리며 카페, 음식점, 새벽알바 등 온갖 일을 하였습니다. 전액장학금을 받았지만, 영국 대학원 중에 학비가 가장 높아서 등록금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놀라운 은혜로 학과에서 가장 좋은 성적으로 대학원 MA 졸업을 하였습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주시고 작품활동을 하는데 지혜와 체력을 주셨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동기들과 작업실을 함께 차려서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고 전시회도 하며 작품을 판매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생활고는 힘들었고 십일조도 못내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했던 무수한 알바의 경험들이 현재를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했던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예비해놓으셨다고 믿습니다.


MA를 졸업하고 리서치과정인 MPHIL을 할때의 일입니다. (영국의 학제는 박사과정으로 분류되는 리서치과정이 MPHIL 2년 + PhD 2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과 학제가 달라서 리서치과정인 MPHIL을 졸업하면 여전히 Master로 여겨지곤 하는데 일반 석사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석사과정에서는 감사하게 전액장학금을 받았지만, 그 이후에 MPHIL 과정에 합격해서 공부와 연구를 이어나갈때는 장학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겨우 대출을 받아서 근근히 이어나갔지만, 생활비는 없고 공부는 어려워서 많은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도움의 손길과 옆의 든든한 친구들, 동역자분들이 있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유학생의 돈으로 학교가 운영된다고 할 정도로 외국 유학생들의 학비가 엄청났는데, 그래서 자체적으로 외국유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도 전무후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등록금으로 고통받고 있을때, 조교할머니가 부르시더니, 제가 5000파운드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5000파운드는 약 한화로 900만원의 큰 돈입니다. 그래서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더니, 유학생 알럼나이 장학금이 갑자기 생겼는데, 각 과에서 누구를 줄까 정할 수가 없어서 후보자 한사람씩 정해서 이름을 써서 모자에 넣고 제비뽑기를 했는데 제 이름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할렐루야!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아니시면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랜 런던생활을 마치고 한국을 가야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저는 PhD 과정을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중간에 MPHIL과정으로 영국의 두번째 학위를 마치고 귀국해야만했습니다. 저도 많이 부족했지만, 다른 방법을 찾을때마다 막혔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지 않은지 원망도 많이 했지만,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라는 말씀을 새겼습니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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