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by 도자기로드
나의 이야기, 나의 간증_세번째이야기


> 2편에서 이어집니다.


저는 귀국을 해서 요리를 전공한 동생과 함께 얼떨결에 사업체를 꾸리며 작품, 대학교 강의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작은 사업이었지만 일을 하면서 오랫동안 외국생활에 익숙해져있던 제가 한국에 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고 역문화충격도 많이 받아서 다시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동생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동생은 저와는 6살 차이로 우리집의 까만양, 영어표현으로는 '가족내에서 말썽쟁이' 였습니다. 작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이 글의 주제와는 맞지 않아 넘어가겠습니다. 동생이 꿈이 파티시에였는데 공부를 잘했던 저와 언니와 달리 공부에는 뜻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성적으로 대학을 들어갔는데 1학기만에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런던에 있다보니 대학교 동기중에 영국학생 중 하나가 셰프로 활동 중이면서 대학원에 진학한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 동생을 영국에 오게 하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등록금이었습니다. 생각을 하고 있던 즈음, 제가 대학원 1학년때 갑자기 엄마와 연락이 잘 안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교통사고를 당해서 4개월동안 병원에 입원해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엄마는 경제적인 이유로 동생을 런던에 보낼수 없다했고, 나는 동생을 런던에 데려와서 사람을 만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런던에 오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교통사고 합의금은 동생의 1년 등록금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동생은 프랑스 본사, 런던의 유명 제과제빵 학교에 다녔습니다.


동생도 국가사업을 통해 말레이시아, 필리핀, 그리고 싱가포르를 거쳐서 요리를 배우고 일을 하다가 제가 귀국할 즈음에 함께 귀국했습니다. 저는 귀국하면서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이사비용, 비행기비용 등에 사용했기에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34살에 한국에 왔는데 무일푼에 돈도 빽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동네의 7평 상가를 얻어서 월세 40만원에 동생과 저의 보금자리로 사용했습니다. 저는 작업실로 사용하려고했는데 어쩌다보니 작은 사업이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업이라는 것이 잘될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습니다. 코로나시절 모든 행사가 취소되고 수입이 전혀없을 때 공장 아르바이트도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려고 했습니다. 들어오는 돈은 하나도 없는데, 임대료, 세금, 4대보험등 나가는 돈은 몇백만원이 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저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쳤습니다.


어느 날부터 괜히 너무 피곤했습니다. 운동을 다녀와서 2시간씩 자게되는 날도 많았는데, 하루는 오들오들 떨리고 오한, 열에 심한 구토가 와서 코로나가 걸렸는지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가 심했던 시절입니다. 코로나 음성 결과가 나오고 조금 괜찮아져서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 그날 밤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병원 응급실로 가서 피검사를 했습니다. 급성 B형 간염이 걸렸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동안 입원한 환자 중에 간수치가 가장 높다면서 수치가 점점 올라서 3500이 되었습니다. 보통 성인 여성의 정상수치는 20, 남성은 40입니다. 급성 B형간염은 전염성이 있어서 1인실에 격리가 되었고 그 이후 2주일간 입원을 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모든 금식, 물금식 처방이 내려지고, 먹은 것도 없는데 몸속의 모든 액체가 다 나오는 것만 같은 구토가 매일 이어졌습니다. 당시에 안 사실은 급성 B형간염은 아직도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매일 회진오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간이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 일주일간 핸드폰, TV을 보지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누워서 사경을 해메었습니다. 누워서 있는데 갑자기 제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 행복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영화 필름과 같이 지나가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가 나이가 이제 사십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배우자가 없는 것도, 이번에 죽어서 천국가면 그 배우자는 어떻게 사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결혼을 아직도 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국에서 같이 유학하던 친구들은 한국에 오면 대부분 1,2년내로 결혼을 하는데 나는 왜 짝이 없는 것인가 걱정을 하다가도,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의 말씀을 새기며 저에게도 하나님이 돕는 배필을 마련해 두었을 것이라 믿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원한지 2주가 넘어가게 되자, 기적과 같이 수치도 떨어지고 선생님이 치료제가 없는데 계속 병원에 있기는 어렵다면서 집에서 재활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집에서 화장실만 가도 숨이 찰 정도로 회복이 안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다행 중에 다행히 집에서 요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완전 체력 회복까지는 1~2년이 걸렸습니다.


저는 중학생때부터 매일 4-5시간씩 자며 공부를 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공부와 일에 치여서 잠을 못잤는데

아프고 난 이후에는 무조건 7시간 이상 자야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서 건강을 해치고 있던 저에게 하나님이 이런 시련 속에서 중요한 일인, 건강을 돌보는 시간을 허락하신 것 같습니다.


> 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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