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를 찬송하리로다

by 도자기로드
나의 이야기, 나의 간증_네번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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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한국에 온지도 이제 10년이 넘었습니다.

이번 간증은 2년전, 1년전의 결혼이야기입니다.


그동안 같은 기독교인 배우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했지만 좀처럼 제 짝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장 18절) 말씀만 믿고 기도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던 와중, 2022년에 언니와 동생이 모두 첫 아들을 낳았는데, 코로나와 독박육아로 인해 언니와 조카가 집으로 7개월간 들어와서 살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육아에 동참을 하게되었습니다.


언니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언니는 저와 한 살차이인데 20대 후반에 결혼했으나 아이의 축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시험관 시술 2번만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결혼 13년만의 귀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집안의 경사였습니다. 신생아 조카는 주중엔 우리집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형부와 함께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가 매일 자라는 것을 보면서 마치 내 아들인양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당시 저는 남자친구도 없고,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기에, 조카를 내 아들인양 생각하고 정성껏 같이 키웠습니다. 아이를 보니, 결혼에 대한 마음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지금의 남편을 기적처럼 만났습니다. 남편은 저의 첫사랑입니다.

교회에서 교구목사님과 전도사님을 통해 소개를 받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평생 같은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교회가 워낙커서 같은 교회를 다녀도 구역이 달라서 본적도 만난적도 없습니다. 사실 제가 스펙이 너무 높아서, 그동안 전도사님이 소개시켜주실 생각도 못했다고 했는데, 이전 전도사님이 다른 구역으로 가시고 새로운 전도사님이 오시면서 저에대해 잘 알지 못하고 노처녀, 노총각이 있다고 해서 연결 연결을 시켜주신 것입니다. 알고보니 교구목사님이 잘 아시는 분들의 아드님이었습니다. 저는 상대방의 스펙이 하나도 상관이 없었기에, 오픈마인드로 소개팅을 나갔는데 결국엔 결혼까지 이어졌습니다.


결혼식을 하게 된 것도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의 은혜가 없었으면,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잠깐 아빠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빠는 1편에도 잠깐 이야기했듯이, 불교집안의 장손입니다. 물론 평생 교회를 반대하면서 지금도 예수님을 안좋아하십니다.(순화된 표현)


제가 5,6살때 일입니다. 아빠가 엄마가 교회를 나가는 것을 알고 우리를 앞세워서 엄마를 교회로 잡으러 갔습니다. (참고로 저는 기억력이 좋아서 어렸을 때 일도, 물건의 히스토리도 다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했나봅니다.) 엄마는 결혼 전에는 예수님을 믿었는데 결혼하면서 불교집안으로 시집을 가게되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천식에 걸려서 계단 3개도 못올라갔습니다. 엄마와 세브란스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6개월도 못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동네 구역장님의 전도로 교회에 나갔고, 신유의 은사로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같은 교회를 섬기고 계십니다.

결론은, 아빠가 엄마를 잡아서? 집에서 부부싸움이 크게 났습니다. 저는 피묻은 걸레를 빨면서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생생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므로 생략) 아빠는 교회 이슈만 아니면 참 좋으신 분입니다. 딸들에게 잘해주셔서 어렸을때부터 우리는 아빠를 참 좋아했습니다. 오죽하면, 아랫집에서 우리 아빠가 올때마다 딸들이 좋다고 소리를 질러서 시끄럽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저는 아빠가 예수님을 욕하며 엄마를 잡으러 오셨던 바로 그 교회성전에서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결혼식 날짜로 정해둔 날짜의 3개월 전까지도 교회에서 결혼하는 것을 심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결혼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결혼식도 못하고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자기는 괜찮다며 다독여줬습니다.


엄마가 미리 예비 시어머니를 만나 사정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작정기도를 드리자고 하고, 21일간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다니엘처럼 21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일로 미뤄지고 미뤄졌던

상견례 자리에서 아빠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아빠가 약간 조선시대? 사람이라서 남자쪽에서 하자는대로 따라가는 것도 있었는데, 아빠의 자존심이 허락을 안했는지 그로부터 일주일은 집안에서 말한마디 안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빠가 그렇게 싫어하시던 당회장 목사님과 주례로 저희 부부는 작년에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는 당연한 교회 결혼이 저희 가족에게는 기적이고 하나님 은혜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결혼도 물론 아주 큰 기쁜 일이었지만, 아빠가 교회에 발걸음을 하였다는 사실 만으로도 저희 가족에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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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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