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의 간증_ 첫번째이야기
요즘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꿈을 포기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저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부족하지만 간증으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강하게 들어 이렇게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도 다른 분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꿈을 키우고 은혜를 받았기에 저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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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크리스천입니다.
저는 4살 즈음에 부모님을 따라서 지금 사는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결혼 전에 교회에 다녔으나 불교집안에 시집을 오게 되셔서 주님을 떠나 살아가다가, 이사온 후 동네 구역장님의 인도를 받아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엄마가 심한 천식으로 인해 병원에서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주님의 놀라우신 신유의 은혜로 치유를 받아 지금은 약 40년간 구역장님으로 봉사하며 저와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와 저, 언니, 동생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 몰래 교회에 다녔습니다. 제가 지금 40대인데 제작년까지도 아빠에게 교회 간다는 말을 마음껏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어렸을 때 겪은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실한 불교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빠는 교회다니는 엄마를 심하게 핍박하여, 제가 5, 6살 될 무렵 엄마를 교회로 잡으러 오셨습니다. 당시에 언니와 저는 울면서 집으로 같이 따라갔고 자세히 밝히지는 못하지만 부부싸움이 격렬해서 아빠에게는 그때 생긴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엄마는 집안 모든 사람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저희 세 자매를 믿음으로 모두 길러내시고 기도로 인내하셨습니다.
다행히 저희 세 자매는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성장하여 공부도 잘하고 학창시절 어려웠던 IMF시절도 잘 이겨냈습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공부 욕심이 많고 미술에 재능이 있어서 미대에 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IMF 시절 모두가 힘들었을 때 아빠도 실직하게 되어서 꿈을 접어야 할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엄마의 나이 42살에 처음 보험일을 시작하여 공부를 이어나가게 도와주셨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주위 사람들이 보험의 필요성을 잘 몰라서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보험 안들어도 된다면서 엄마를 믿음없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저도 어려운 집안 사정을 너무나 잘 알기에 사춘기도 겪지않고 열심히 학생으로서의 제 할 일을 하며 재수 끝에 제가 원하던 대학, 전공에 합격하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알바를 하면서 등록금과 재료비 등을 벌면서 열심히 살면서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때 유학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주위의 사람들, 친척들은 모두 돈있는 집안 자식이 유학가는 것이라 말렸고, 가서도 금방 돌아올 것이라는 부정적인 말만 했습니다.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저는 깡이 있었기에 내가 보여준다면서 그런 사람들의 말은 뒤로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제가 유학을 준비하던 2007년에 단기선교학교가 생겼습니다. 몇 개월 정도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선교 강의도 듣고 조별로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미국, 영국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현재는 크리스천이 매우 적고, 교회도 레스토랑, 클럽으로 바뀌어 간다는 강연을 듣고 간절히 런던으로 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선교학교를 마칠 무렵, 제 분야에서 세계 1, 2위인 영국, 미국 대학교에 모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영국대학원 인터뷰에 가서는 여리고성을 돌듯, 작품을 모두 가방에 메고 학교 주위를 일곱바퀴를 돌면서 합격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천국에 가신 이희돈장로님의 간증을 듣고 저도 힘을 낸것입니다. 그때만해도 핸드폰으로 쉽게 간증을 들을 수 없었기에, 학원선생님이 빌려주신 카세트테이프를 엄마 차에서 틀어놓고 엄마와 제가 집에 들어가지는 못하고(아빠 덕분에?) 차에서 간증을 들었습니다.
저는 가진 돈이 하나도 없고, 합격해도 등록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학비문제를 해결해 주실 생각이면, 합격하게 해주시고 아니면 불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 선교학교에서 선교지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의 반은 저의 진로를 위해 기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후에,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받고 뛸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장학금은 반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다는 이야기에 또 절망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제가 정말 바라고 소망하던 영국 대학원도 합격하였으나 유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신 당시 한국에서 예체능계에 유일하게 장학금 기회를 주던 장학재단에 지원을 해서 기적처럼 전액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힘들었고 대학은 합격했으나, 입학을 못하게 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되니 피가 말랐습니다. 제 믿음이 너무 약했습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