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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로드 Jul 27. 2019

프롤로그_01

영국도자기마을 


어려서부터 TV쇼 진품명품, 매주 챙겨보던 KBS 역사스페셜, 박물관의 도자기 구경을 좋아했던 나는 엉뚱하고 순진한 꿈이 있었다. 도자기를 배워 우리나라 청자를 복원하겠다는 생각에 도예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자기에 대한 잠재성과 믿음 열정 만을 가지고 영국 런던으로 갔다. 영국으로 유학 간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 중에 기억이 남는 것이 있다. 한국이 도자기로 가장 유명한데 굳이 왜 유학을 가며,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아니냐에 대한 물음이었다. 당시에 나는 이런 물음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국 도자기의 역사도 제대로 몰랐고, 둘의 차이점, 장점 등을 비교해서 대답하기에는 영국 도자기에 관해 너무나 무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영국에 가기 전에 내가 한국에서 접했던 유럽 도자기라고는, 부천 유럽자기박물관에서 보았던 화려한 패턴의 찻잔과 도자기 인형들이 전부였다. 드라마에서 보던 어느 귀부인의 찬장에나 있을 법한 도자기 인형, 찻잔들에 박물관 속 도자기들 당시에는 왠지 모르게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고, 나아가 그런 장식들이 너무 화려해서 과하게 느껴졌다. 


2007년, 영국 왕립예술대학원(Royal College of Art, 이하 RCA) 석사학위 심사 인터뷰를 위해 처음 방문한 영국 런던은 유럽 대륙 중에서도 너무나 나에게 혹독하게 추운 도시로 기억된다. 3월 말이었는데도 한겨울처럼 매서운 바람 그리고 계속 내리는 빗 속에서 큰 여행용 가방을 끌고 왔다갔다 하려니 너무 힘들었다. 선진국이지만, 여행하기엔 한국보다 불편한 점도 많았다. 심사를 위해 여러개의 도자기 작품을 커다란 캐리어에 담아왔기 때문에 짐은 무거웠고, 비는 추적추적 계속 왔다. 한 차례의 고비 끝에 난, 그 이듬해 2008년부터 세계 일류 아트&디자인 학교인 RCA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영국에 와서 내가 처음 느꼈던 바람과 비는 점점 일상의 한 단면들이 되었다. 


10여년동안 내가 본 영국은 가장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이고,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유산이 살아있는 역사와 컨템프러리의 조화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 도시였다. 물론, 유학 생활은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했다. 외국인으로 살면서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감사한 일도 많았다. 방학이면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도자기 공장, 박물관을 보러 떠났다. 영국 대부분의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다. 스스로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나만의 소확행이었다. 사실 그 이전에,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영국 도자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이 생긴 계기가 된 것은, 여러 해 공사 중이었던 V&A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 6층의 세라믹 갤러리가 2009년 재 오픈해 방문했던 일이었다. 살면서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도자기는 처음 보았다. 한 층이 모두 작은 갤러리 방으로 나뉘어 있었고 갤러리 안마다 도자기를 진열해 놓은 유리 캐비냇이 있었는데 그 높이가 바닥 밑에서부터 천장까지 닿아 있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아서 도자기는 오직 바닥만 보이는데도 모두 하나 같이 유리장 안에 꼭 들어가야 하는 것 마냥 전시되어 있는 것이 독특했다. 서울 지하철 아침 출근 시간의 사람들 같았다. 모두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다른 얼굴로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유리창 너머 도자기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영국에서 살면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미술품 전시, 문화를 누리며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작은 것도 수집하는 취미를 어려서부터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는 사람들. 현대예술작품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구매하고 싶어 하며 그 과정에서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중시하고, 경청했다. 또한, 부러웠던 환경은 학술적으로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풍부한 아카이브와 자료들이었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여러 유관기관 등에 연구목적으로 문의를 하면, 아낌없는 도움을 주었고, 빌려볼 수 있는 책도 다양했다. 석사, MPhil 논문뿐만 아니라, 작업을 위해 리서치 할 자료들이 풍부한 영국 생활은 정말 감사한 생활이었고, 지식의 목마름을 촉촉이 적셔 주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영국 생활 중, 지금 쓰게 된 책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도자기공장, 박물관 시리즈(월간도예 2014. 10~2015.8)가 탄생했다. 그리고 파란도자기를 주제로 한 Blue 시리즈(2017. 11~2019.4)가 나왔다. 


내가 10여 년 전에 가진 유럽도자기에 관한 내 무지와 고정관념은 대부분의 사람과 비슷할 것이라고 느낀다. 이러한 도자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던 유럽 각 국가의 역사, 문화, 사회적 상황에 대해 쉽게 접할 길이 없었고, 지금보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 이러한 지식에 대해 공부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몰랐던 나이였다. 내가 도자기를 처음 배우던 20살 때, 대학교의 도서관을 찾아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과에서 배우는 도자기에 대한 실기와 기초지식을 더 알고 싶어서 책을 빌리려고 했는데, 구비 도서가 몇 권이 없었고, 그마저 너무 오래전에 출간되어 업데이트가 안 된 경우도 있었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책을 쓰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 책은 내가 20여년간 흙을 만지면서 쌓아온 생각 항아리이고, 영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도예가로 활동하면서 기록했던 일기이다. 각자 이 책을 접하는 동기는 다르겠지만, 영국 유명 도자기 브랜드 제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배경 지식을 발견하는 보물창고가, 코로나 이후 여행을 꿈꾸는 여행객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여행 지도가 되길 바라며, 도자기를 전공하거나 취미로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작업실에서 흙을 다룰 때 배경지식으로써 읽어보게 되는 앎의 즐거움을 주는 친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코로나 19로 해외여행은 갈 수 없지만, 랜선으로, 상상의 눈으로,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영국 도자기 시간 여행을 함께 떠나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정리하게 되었다. 


다 읽은 후에는 우리집 장식장에서 도자기를 꺼내보거나, 백화점 도자기 코너에도 방문해보며 도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노팅힐 글방에서

Sun A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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