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일기
고등학교 친구 K와 Y를 만났다.
지난겨울 Y가 둘째를 출산했을 때, 늦은 시간 조리원에서의 짧은 담소가 아쉬워서 날을 잡고 만남을 가졌다. Y는 아직 어린 둘째는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나와 함께 내 차를 타고 M동에 있는 K의 집으로 집들이 아닌 집들이를 갔다.
K는 본인이 직접 준비한 맛있는 요리로 우리를 대접했다. 맛도 있었지만 플레이팅에 주력한 상차림이었다. 우리들이 오니까 좀 더 신경은 쓰긴 했겠으나 평소에도 그냥 대충 먹는 게 아니라 하나를 먹어도 예쁜 그릇에 예쁘게 담아 먹는 달달한 신혼 생활이 느껴졌다.
그간의 만남들에서는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의 고달픈(주로 직장) 이야기들이 우리 대화의 주제가 되었던 반면, 오늘의 만남에서는 ‘남편과의 관계, 시댁, 재테크, 출산과 육아’가 유부녀가 된 그녀들과의 대화 주제가 되었다.
단란한 신혼을 즐기는 K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마음의 평안과 소소한 행복이 엿보였다. 각자의 취미와 생활의 여유들로 채워 넣은 공간은 내가 그려왔던 휴식처로서의 집이었다. 나는 “깔끔하게 해 놓고 사네, 이쁘게 해 놓고 사네, 우리 집에서는 이런 느낌이 안나, 너무 좋다 야, 너무 좋아’라며 부러움을 내비쳤다. K는 대수롭지 않게 “넌 그냥 오늘 쉬어서 좋은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분명 휴가의 즐거움 말고도 인생의 동반자가 생긴 K에게서 느껴지는 안정감에 대한 동경을 아기자기한 신혼 인테리어에 대한 부러움으로 돌려서 한 말이었다.
일반적인 코스로 신혼의 삶의 즐기는 K와 달리 Y는 급작스러운 임신으로 결혼했고, 최근에는 연년생으로 둘째까지 낳았다. 준비되진 않은 채 아내와 엄마가 된 Y의 삶은 팍팍해 보였다. K보다 안정되었고 더 앞서가고 있지만 Y에게는 부러움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자기 일이라고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된 삶. 친구로서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언니들에게서나 볼 수 있던 완연한 애기 엄마의 모습(자기 식사는 할 생각도 못하고 부랴부랴 아이 밥부터 먹이는 모습, ‘코코 코코 눈!’하며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 수시로 기저귀를 확인하고 갈아주는 모습, 스스럼없이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며 Y가 정말 엄마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우린 정말 우리 중 하나가 엄마가 되고, 새댁이 된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를 먹은 것이다.
그래, 나도 많이 변했지. 교복을 입고 소리 지르며 복도를 뛰어다니던 철부지 여고생은 대학을 나와 직장생활을 하고, 승진을 했고, 운전도 하면서 자가용을 몰고 다니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빼곡히 쌓여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되어 버렸지만 나의 변화보다는 듬성듬성 보는 친구들의 변화가 세월의 흐름을 더 빠르게 확인시켜준다.
시댁 식구들 이야기, 대출금 갚는 일, 아이 키우는 것.. 지금도 어른들의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이 일들은 이미 나보다 한 발 앞서 간 친구들에겐 현실이 되었다. 나도 그렇게 되겠지.. 되겠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지긋지긋한 직장을 때려치울까?, 때려치우고 나면 어떻게 먹고살까?, 사람만 좋은 L과의 만남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끝내야 할 것 같은데 그 끝은 언제이며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누군가를 만나 어떻게 다시 시작을 하게 될까? 저들의 현실은 언제쯤 내게도 현실이 될까? 너무나도 막막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