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일상 속 미시 파시즘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독재자, 나의 나폴레옹(!!!!)

by 안녕

「동물농장」은 재미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는 동물이고 심지어 그 동물들은 사람처럼 말을 하고, 글을 읽고, 역할을 분담하여 노동을 한다. 이야기 구조 역시 단순하여 한 때는 아동소설로 잘못 분류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물농장」은 저자 조지 오웰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독재정치의 폐해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사회주의 이념이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고발하는 정치풍자소설이다.


1. 조지 오웰의 생애와 예술관

「동물농장」의 저자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1903년에 인도의 벵골 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고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가정형편 상 대학에 가지 않고 영국에서 인도제국 경찰로 근무했는데, 제국주의 경찰로서의 경험은 오웰로 하여금 권력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했으며, 그의 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경찰생활을 그만두고 미얀마에서 돌아온 뒤 런던과 파리에서의 생활은 그를 당시의 사회 현실에 관해 더더욱 비판적으로 만들었다. 오웰은 ‘민주 사회주의’ 실현을 굳게 믿었고, 스탈린 체제의 러시아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1936년 12월부터 1937년 6월까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며 전체주의의 실상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는데, 이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정치풍자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2. 「동물농장」의 배경 - 변질된 사회주의

1900년대 초반, 러시아는 차르(황제)에 의한 강력한 전제군주제 하에 통치되었다. 당시 군주였던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정치적으로 매우 무능했다. 이러한 틈을 타 등장한 당시의 ‘비선 실세’였던 요승(妖僧)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황권을 등에 업은 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민중의 생활은 날로 궁핍해졌고 결국, 농민과 노동자가 중심으로 시위가 발발했다. 1917년 2월 23일, 수 천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니콜라이 2세는 혁명을 타개하지 못하고 그해 3월 2일 하야한다. 차르의 하야로 300여 년간 지속된 로마노프 왕조와 함께 군주제는 무너지고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운 레닌과 스탈린, 트로츠키 등이 ‘소비에트 연방’을 건립한다. 그러나 차르가 물러나고 혁명이 승리했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을 아니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들은 체제 유지를 위해 다시 민중을 억압하며 점차 독재정권으로 변질되어갔다.



3. 「동물농장」의 상징 - 변질된 동물농장

「동물농장」의 서사는 볼셰비키 혁명 이후부터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다룬다.「동물농장」 속 캐릭터와 사건들을 현실세계와 연결 지면 다음과 같다.

동물들의 반란은 메이저 영감의 연설에서부터 시작된다. 메이저 감은 책 속에서 무려 8페이지(내가 읽은 책은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이다)에 걸쳐 반란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와 인간이 추방되어 사라진 후에 펼쳐질 세상에 대해 설명하며 동물들에게 <영국의 동물들>을 가르친다. 메이저 영감은 연설 말미에 인간을 정복한 후에라도 인간이 행해온 악습을 답습해선 안되며, 폭력으로 동족을 탄압해선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마르크스 주창한 사회주의 이념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메이저 영감 사후 동물들은 반란을 일으켜 성공한다.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일하지도, 새끼들을 빼앗기지도, 도살장에 끌려가지도 않게 되었다. 탐욕스러운 주인이 주는 치사한 먹이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들 자신을 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역량에 맞게 땀 흘려 일했고 수확량은 존스가 있던 시절보다 많았다. 동물들은 ‘메이너 농장’이라는 글씨를 지우고 ‘동물농장’을 새겨 넣었다. 동물 주의 실현을 위한 7가지 계명도 세웠다. 그러나 동물 주의에 입각한 반란에도 반란을 이끄는 지도층이 있었고 이 지도층은 지배층으로 변질된다. 동몰농장의 두 리더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매사에 대립했고 그들의 갈등은 풍차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장에서 폭발한다. 투표장에 나폴레옹이 훈련(세뇌교육)시킨 제시와 블루벨의 아홉 마리 개들이 갑자기 나타나 스노볼을 공격하며 그를 농장에서 몰아낸다. 스노볼이 숙청된 이후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6장은 ‘동물들은 그해 내내 노예마냥 일만 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폴레옹의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유지했던 권력구도가 스노볼의 숙청으로 인해 나폴레옹으로 집중, 독재정치 가능해진 것이다. 나폴레옹의 권력은 날로 공포스럽게 변해간다. 스퀼러와 양들을 매일 같이 나폴레옹을 찬양하고 개들은 언제나 나폴레옹의 주위에서 그를 호위하며 다른 동물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스탈린 독재정치로 사회주의 이념이 변질되었듯 나폴레옹은 7가지 계명을 스스로 왜곡하며 동물주의를 변질시킨다. 어떤 동물들(돼지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며 돼지들의 지배를 정당화했고,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침대에서 잠을 잤으며, 인간처럼 걷기도 했다. 급기야는 권력에 저항하는 다른 동물들을 공개석상에서 잔인하게 처형했다. 이는 지도자를 대한 무한 찬양과 그 권력에 저항할 수 없도록 공포정치를 실현하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일부 독재국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게 돼버렸다.




4. 일상 속 나폴레옹(스탈린)

조지 오웰의 풍자는 20세기 초반, 러시아의 변질된 사회주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체주의든,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자본주의든 상관없다. 오웰은 「동물농장」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권력을 비판한다. 이러한 오웰의 날카로운 비판에서 오늘날의 우리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한민국의 조직문화를 보자. 나폴레옹과 같은 일부 권력자에게 의해 공동체의 운명이 좌우되고 개인의 개성과 선택권은 무시된다. 독재자는 자신의 가치관과 스스로가 정한 규율로 다른 구성원들을 통제하려 든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태어났을 뿐이고, 먼저 대학에 진학을 뿐이고, 먼저 입사했을 뿐인 사람들이 나이를, 연차를 무기로 타인의 행동과 가치관까지 지배하려 든다. 그들은 자신의 편협한 경험과 잣대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고 구속한다. 어떠한 논리적 근거도, 원리도, 원칙도 없이 ‘내맴’이 곧 원칙이고 법이다. 자신의 생각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자들은 ‘공동체’, ‘조직’에 반기를 드는 것이라며 마녀사냥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이의 많고 적음과 직급의 높고 낮음이 결코 인간 가치의 우열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은 권력이라도 손에 쥔 이들은 "니들은 안되지만 '특별한' 나는 된다, 너희 모두가 내 직원이지만 어떤 직원은 다른 직원보다 '더' 내 직원이다"라며 스스로를 우상화하고 충성을 강요한다. 「동물농장」을 다시 읽으며, 그들은 소설 속 나폴레옹과 역사 속 스탈린, 히틀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개인의 개성과 가치관은 정말 소중한 것이고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역사 속 독재자들이 모두 허망한 마지막을 맞은 것은 정의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런 의미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숭고한 것이다!'라며 기계적 교훈을 얻을까? 그러면서도 '개인의 가치', '인권', '민주주의' 이런 단어들은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개념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뼛속 깊게 새겨 든 생활 속 권위의식과는 별개라고 여길까?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동물농장」 속 나폴레옹, 역사 속 스탈린과 히틀러라는 사실은 결코 인지할 수 없을까?

일상 속 독재에 대해 나와 같은 약자들이 택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닭들'처럼 한 판 붙던가, ‘복서’처럼 독재에 성실하게 순응하는 무지한 자가 되던가, ‘스퀼러’와 ‘양들’처럼 권력에 기생하며 호가호위하는 삶을 누리던가. 투쟁할 열정은 없다. 그렇다고 평화를 위해 타협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똑같은 인간이 되긴 더더욱 싫다. 어쩌겠다는 말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못 참겠다. 도비도 주인을 배반(?)했지 않은가! 소심하지만 혼자 쌓아두었던 외침들을 이제는 꺼내고 싶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돼지와는 구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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