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도구, 낯선 현실
그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시트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막힘없이 발표하던 인턴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PPT에는 유럽 주요 가전기업의 시장점유율, 가격 포지셔닝, 경쟁사 비교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정리’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음... 몇 개 보고서를 참고해서… 정리한 겁니다.”
“직접 데이터를 보신 건가요?”
“아뇨, 기존 리포트를 기반으로...”
대답은 점점 흐려졌고,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자료를 요약할 줄은 알지만, 본질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는 태도’. 발표는 형식상 무리 없었지만, 그 안엔 진짜 생각도, 실체도 없었다.
반면,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인턴은 덜 다듬어진 문서와 어설픈 발표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인상을 남겼다.
“이 가격은 어디서 확인했어요?”
“독일, 프랑스, 스페인의 쇼핑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봤습니다. 프로모션 주기도 다르고, 제품설명이 강조하는 포인트도 미묘하게 달라서 재미있더라고요.”
그는 2주간 온라인 매장을 뒤지며 가격과 설명, 소비자 반응을 정리했다. 실시간 시장의 감각을 갖춘 보고였다.
결과는 명확했다. 기존 리포터를 짜깁기 하는데 그친 인턴은 끝내 채용되지 않았고, 열심히 바닥을 긁어 자료를 모은 인턴은 그해 입사한 뒤 현재까지도 잘 다니고 있다. 그가 보여준 태도는 AI 시대 이전에도 중요한 자질이었지만, 지금은 더욱 절실한 ‘직접 보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힘’이었다.
오늘날 신입사원들은 스마트하게 보인다. 대학 시절부터 AI에 익숙해졌고, 리포트 하나, 발표자료 하나를 만들더라도 ChatGPT와 같은 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한다. 정돈된 말투, 보기 좋은 디자인, 흠잡을 데 없는 구조.
그런데 실무의 눈으로 보면 어딘가 어긋난다. 겉보기에 잘 정리된 문서 속에 ‘자기 언어’가 없고, 실제 맥락과 닿아 있지 않은 추상적 판단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이를 “AI 시대의 보고서 짜깁기”라고 표현했다. 문서에 드러난 스마트함 이면에 있는 것은, 현장을 바닥부터 긁는 고통을 피해온 훈련의 공백이다. 분석보다는 조립, 숙고보다는 검색, 실천보다는 ‘최적화’에 익숙한 주니어들.
이들은 회사에서 처음으로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질문’과 맞닥뜨린다.
더 심각한 것은 모르면서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정리한 거예요?”
“음... GPT가 그렇게 써줘서요.”
이런 대화가 현실에서 오가고 있다. 바쁜 팀장, 짧은 보고 시간,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실무 환경은 상사로 하여금 친절한 설명 대신 “다시 생각해 보세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게 만든다.
결국 신입은 다시 AI를 켜고, 또다시 유사 문장을 이어 붙인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실무자가 진짜 궁금한 포인트를 비껴간다.
이러한 ‘반복된 어긋남’은 신입에게 좌절감을 주고, 상사에겐 피로감을 남긴다. 결국 “이래서 신입 뽑아도 도움 안 돼”라는 말이 회의실 밖을 맴돈다.
기업은 왜 신입사원을 뽑는가.
그들은 당장 성과를 낼 인력은 아니다. 신입을 뽑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조직 문화에 물들며, 새로운 관점으로 조직의 생기를 불어넣는 ‘신선한 피’.
하지만 최근 많은 기업들이 이 투자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왜 이 정도도 몰라?”
“AI가 한 게 나아요.”
“차라리 경력직을 쓰는 게 낫겠어.”
이런 말들이 회의실에서 흘러나오는 시대. 채용이 줄고, 인턴십조차 ‘면접 전시회’처럼 전락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은 질문한다.
과연 지금도 신입을 뽑아야 하는가?
이 장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실무의 언어로 그려보았다.
겉으로는 영리해 보이지만 실전에서는 어긋나는 신입들.
AI가 점점 더 유능해지는 이 시대에, 기업은 왜 여전히 신입을 뽑아야 할까?
기계보다 느린 인간을 왜 육성해야 할까?
제4장. 기업은 왜 여전히 주니어를 뽑아야 하는가
다음 장에서는 이 질문을 파고든다.
‘효율’이 아닌 ‘미래’의 관점에서, 신입 육성이 조직의 전략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