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AI를 부정하고, 학생은 AI에 의존한다
대학에 입학한 딸아이의 말은, 요즘 교실 풍경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강의는 교수 혼자 말하고, 학생들은 조용히 듣는 ‘일방향 전달’ 방식 그대로다. 달라진 건 종이 노트 대신 패드가 있고, 손으로 필기하던 대신 AI 기반 앱으로 녹음하고, 요약하고, 정리한다는 점이다. 노트북조차 무겁다며 들고 다니지 않고, 리포트는 ChatGPT로 뚝딱 만들어낸다. PPT 발표도 슬라이드AI로 처리하고, 팀플 내용은 번역기처럼 요약만 주고받는다.
처음엔 대학에서 진짜 토론과 지적 자극을 기대했단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질문은 분위기를 깨는 행위였고, 교수는 질문을 꺼리는 듯했다. “그건 나중에 따로 보자”는 말은 늘 반복됐고, 질문했던 친구는 결국 더 이상 손을 들지 않았다. 딸아이는 말했다. “그 분위기에서 질문한다는 건 용기가 아니라, 눈치 없는 행동이야.”
한때는 '검색'이 주도권을 쥐었다. 무엇이든 구글링 했고, 요약 노트가 거래됐으며, 필기 내용이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낡은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학생들은 수업을 녹음하고, 자동 녹취와 요약 서비스를 활용해 내용을 정리한다. 리포트는 AI가 주제를 분석하고 구조화해 준다. 발표 준비도 슬라이드 작성부터 멘트 구성까지 AI가 제안한다.
교실에 앉은 그들은 더 이상 배움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들은 배움을 수집한다. 그것도 스스로가 아니라, AI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결과, 강의실은 더욱 조용해졌다. 질문은 사라지고, 메모는 줄어들고, 토론은 자취를 감췄다.
이제 교실은 지식의 흐름이 아니라, 데이터 캡처의 공간이 되었다. 교수의 언어는 곧 텍스트 데이터가 되고, 학생의 수업은 ‘요약 파일’로 귀결된다. 강의는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콘텐츠’가 되었고, 학생은 ‘가공되지 않은 인풋’을 다룰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흥미로운 건, 이런 변화에 대해 교수들은 여전히 무심하거나, 부정하거나, 방어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교수는 수업 첫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ChatGPT로 리포트 쓰면 빵점입니다. AI 사용 흔적 있으면 제게 걸립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어떤 부분이 AI인지, 어느 정도가 편집된 건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모호하다. 결과적으로 교수의 ‘위협’은 공허한 선언으로 남고, 학생들은 눈치껏 조합만 다르게 하거나, 몇 문장만 손봐 제출한다.
더 큰 문제는, 교수들 중 상당수가 이 새로운 현실에 대안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는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보조자’가 아니라 ‘공동 작업자’로 자리 잡았는데, 교육 현장은 여전히 과거의 기준에 머무른다. 학습 윤리나 사고력 증진을 위한 재설계 없이, 단속만으로 대응하려 하니, 결과적으로 학생과 교수 사이의 신뢰는 더 깊게 금이 간다.
학생 입장에선, “어차피 교수는 AI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냉소가 생긴다. 그렇게, 질문할 이유는 더 줄어들고, 정답을 재구성하는 기술만 발달한다.
‘질문 없는 교실’을 보완하고자 도입된 팀플은 어떨까?
표면적으로는 협업과 토론의 장이지만, 실제론 역할 분배 후 AI에게 각자 맡긴 업무를 처리하게 하고, 누군가 취합하는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딸아이는 “다들 바쁘니까 그냥 일찍 끝내자는 분위기야. 토론보다 결과물이 중요하거든”이라고 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무난한 결과물을 도출하는 게 목표가 되어버린 팀플은, 학생 간에 서로의 관점을 마주할 기회를 박탈한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생각이 자라고, 의견이 부딪히며, 논의가 진전될 여지는 거의 없다.
게다가, 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참여보다는 결과물 중심의 채점이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질보다 양’의 공식으로 귀결된다. 서로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팀플이, 오히려 ‘AI 활용 스킬 테스트’처럼 변질되는 현실이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기술의 보급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질문할 시간’, ‘의문을 품을 여유’, ‘함께 고민할 관계’가 사라졌다는 데 있다.
학생들은 AI를 능숙하게 활용한다. 그러나 그 활용이 사고를 넓히는 방향이 아니라, 과제를 빨리 끝내기 위한 ‘도구적 전략’으로만 자리 잡은 지금, 그들은 배움을 대체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사고를 외주화 하고 있다.
묻는 연습도, 고민하는 시간도 없이 사회로 나간 이들이, 나중에 문제 해결 능력이나 창의력을 갖추긴 어렵다. 왜냐하면, 한 번도 제대로 ‘묻고 부딪혀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해야 한다.
AI가 도와주는 시대에, 우리는 왜 스스로 질문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AI가 요약해 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가?
교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배움은 자취를 감췄다. 교수는 AI를 위협으로만 인식하고, 학생은 AI를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며,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
그 결과, 교육은 ‘가르침의 장’이 아니라, ‘회피의 기술’을 익히는 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배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질문하지 않은 이들이 사회에 진입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은 자신 있게 묻지 못하고, 피드백을 두려워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형성하지 못한 채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제3장. 입사 후, 벽에 부딪힌 신입들 ― 익숙한 도구, 낯선 현실
다음 장에서는 배움 없는 교육을 통과한 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