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차려준 밥상에 익숙한 사람들
올해 대학에 입학한 딸아이의 말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대학 첫 학기를 다니는 딸은 이상하다는 낌새조차 없이, 무심하게 말을 잇는다.
“다들 그렇게 해. 잘만 되던데 뭐.”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AI를 쓴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무언가—자기 생각으로 삶을 조직하고 해석하려는 욕망의 부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풍경은 낯설고도 기이했다. 마치 배움과 생각의 주체가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조차 낯설지 않은 시대를 목격한 것처럼.
오늘날 Z세대는 AI를 단지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이미 일상의 환경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들에게 챗GPT나 유튜브 알고리즘, 스마트 요약 기능은 공기처럼 자연스럽다.
정보는 질문만 잘 던지면 얻을 수 있고, 문장은 템플릿을 불러오면 정리된다.
물론, 이런 능력은 그들의 ‘도구 활용 능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문제를 '스스로 정의할 필요' 없이도,
적당히 질문하고, 적당히 조합하면, 그럴싸한 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
즉, ‘깊이 있는 사유’보다 ‘빠른 조합 능력’이 우선시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AI가 ‘문제 풀이’를 대신해 주는 시대에, 문제 제기 자체가 사라지는 위험이 함께 도래한 것이다.
이제 대학생들조차 "왜?"보다는 "어떻게?"를 먼저 묻는다.
'문제의 본질'은 배제된 채, 해결 방법만 존재하는 풍경.
"왜 이 수업이 필요한가?" 대신 "이 수업 과제, 어떻게 GPT에 시키면 되지?"가 우선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 구조는 대학이라는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직 내에서도 신입 구성원들에게 자주 보이는 태도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 뭔가요?"라는 본질적인 질문보다, “이건 어떤 포맷으로 정리하나요?" 혹은 "기존 자료는 없나요?" 같은 접근이 주를 이룬다.
이는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세계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정답을 외우고, 절차를 따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교육.
그 과정에서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속도’만이 남았다.
AI의 시대는 어쩌면 인간의 사유 능력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지식은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채 표면에만 맴돈다.
질문은 날카롭고, 대답은 유창하지만,
‘내가 정말로 이해한 것인가?’에 대한 자기 점검은 점점 사라진다.
왜냐하면 이제 검증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GPT가 말한 내용이면 그럴싸하고, 출처만 붙이면 책임은 덜 수 있다.
이것은 지식의 외주화이며, 동시에 사고의 퇴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바쁘게 정보를 축적하는 동안,
우리는 그 정보를 어떻게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맥락화하고, 자기화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을 놓치고 있다.
지금 세대를 두고 “깊이가 없다”, “생각을 안 한다”는 말은 자주 들린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과연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졌는가?
의미를 탐색할 수 있는 여유를, 시스템이 허락했는가?
정보는 넘쳤지만, 사유는 말랐고,
기술은 진보했지만, 교육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들은 미성숙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여백이 제거된 환경 속에서 자란 세대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
이 물음은 교육의 영역에서만 다뤄질 문제가 아니다.
기업, 조직, 리더십, 가정, 모두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이 세대는 단지 ‘학생’이 아니라, 곧 조직의 구성원이자 사회의 의사결정자로 자라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AI에 익숙해진 세대가 왜 ‘사고의 힘’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조명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왜 이 시대는 가르침이 사라졌는가?”
“교수도, 선배도, 주니어에게 진짜를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으로 다음 장은 이어진다.
2장. 질문 없는 교실, 배움 없는 시대
― 교수는 AI를 부정하고, 학생은 AI에 의존한다다 의존 의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