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리더'에서 '함께 배우는 리더'로
대기업 K사의 46세 마케팅부장 박태준.
그는 요즘 부쩍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낀다. 이유는 하나. 임원 승진 대상자 발표까지 5개월. 실적은 충분했고, 글로벌 전시회와 협업 캠페인도 성과가 좋았다. 올해야말로 기회라 믿는다. 그러나 주변 경쟁자들의 면면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끝이라는 긴장감이 온몸에 감돌았다.
바로 그때, 예상 밖의 일이 터졌다. 6개월 전 입사한 신입사원이 팀장 면담 중 이렇게 말했다.
“스타트업에서 AI 마케팅을 더 깊이 배워보고 싶어, 이직하려 합니다.”
순간 박 부장은 말문이 막혔다.
그 신입은 실무 적응이 더뎌서 주요 업무에 투입하지 못했다. 간단한 자료 수집과 리포트 정리, AI 챗봇 테스트 같은 단순한 일만 시켰다. 솔직히 말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배울’ 기대는 오래전에 접었다. 본인도 적극성이 없었고, 실적과 무관한 교육에 시간을 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인사팀은 이런 말을 건넸다. “팀원의 조기 이직은 조직 관리 능력 평가에 반영됩니다.”
승진을 앞둔 입장에서 치명적인 리스크였다. 그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리더로서 뭔가 잘못한 걸까? 가르치지 않아서?
아니, 그런 걸 할 시간이 어디 있었나?”
그날 이후, 박 부장의 눈에 '육성'이라는 단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AI 시대의 리더가 처한 역설은 이렇다.
성과 압박은 강해졌고, 주니어는 더 똑똑해졌지만, 관계는 약해졌다.
요즘의 신입사원들은 AI 툴에 익숙하고,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흡수한다. 그러나 업무 적응에는 시간이 걸리고, 조직의 문법에는 서툴다. 반면, 리더는 실적 달성을 위해 검증된 인재와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주니어를 ‘투자 대상’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AI는 리더의 역할마저 바꾸고 있다. 과거엔 ‘경험’이 권위였지만, 이제는 ‘빠른 학습력’이 경쟁력이다. 젊은 구성원이 더 잘 아는 영역이 늘어나며, 리더는 가르치기보다 배우는 위치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리더는 '가르치기'를 포기하게 되고, 그 결과 주니어는 조직에 정착하지 못한 채 떠나간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리더의 책임이 된다.
전환의 실마리는 의외로 단순한 데 있다.
리더가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는 것이다.
“리더는 AI를 가르쳐줄 수 없고, 신입은 조직을 아직 모른다.
그렇다면, 이 둘은 함께 배워야 한다.”
AI 시대의 조직은 ‘정답’을 아는 사람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주니어는 AI 도구의 잠재력을 직감하고, 리더는 사업과 전략의 관점을 갖고 있다. 이 둘이 협력한다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는 ‘지적 공진화’가 가능하다.
이는 ‘멘토-멘티’의 일방향 관계가 아니다. ‘학습 파트너십’에 가깝다.
리더가 자신을 ‘지도자’가 아니라 ‘주도적 학습자’로 재정의할 때, 조직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1. 과제를 쪼개고, 함께 시도하라: AI 도입, 고객 데이터 분석, 마케팅 자동화 등 작은 단위 과제를 신입과 ‘파일럿’ 방식으로 함께 추진한다.
2. 정답 대신 질문으로 시작하라: “이건 왜 이렇게 하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같은 질문을 리더가 먼저 던진다. 권위보다 호기심이 학습을 이끈다.
3. 리뷰의 문화를 만들라: 가르치는 대신 리뷰하라. 문서, 리서치, 기획안을 함께 리뷰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구조를 만든다.
4. 배움의 흔적을 기록하라: 주니어가 어떤 것을 배우고, 리더는 무엇을 새롭게 얻었는지를 정리한다. ‘성과’ 외에 ‘학습의 이력’도 관리의 대상이다.
이런 방식은 리더의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구성원의 몰입을 유도하고, 리더 자신의 성장에도 기여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몇 달 뒤, 박 부장은 임원 명단에 들지 못했다. 아쉬움이 컸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팀을 떠나려던 신입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부장님, 요즘 회사가 재미있어졌어요. 저한테 의견을 물어보신 이후로요.”
이 한 마디는 그에게 승진보다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 후, 박 부장은 회사의 ‘조직문화 개선 태스크포스 리더’에 선임되었고, 그는 첫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모든 팀장이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짜 AI 시대의 리더십입니다.”
그는 이제 다시 꿈꾼다.
임원이 된다면, 더 많은 리더가 배움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이끄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그가 품은 희망은 단 하나다.
“내가 팀장일 때 주니어를 키우지 않았다면, 내가 임원이 될 자격은 없었다.”
이제는 “내가 임원이 된다면, 모두가 함께 배우는 조직을 만들겠다.”
그의 고백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 조직 전체의 변화를 향한 다짐으로 확장된다.
이제, 리더 개인이 아닌 조직 전체가 함께 배우는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
다음 장에서는 리더의 변화가 어떻게 조직 문화로 확산되고, 학습 공동체로 진화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 실천 방향을 함께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