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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고다히 Oct 20. 2021

나는 4개월 계약직 직원입니다.

나는 항상 직장생활을 오래 하질 못했다.

그만둔 이유는 다양했다.

업무시간이 과도하게 많아 건강을 해친 적도, 직장동료들이 내게 갑질을 한적도, 열심히 노력해도 나의 노력은 쳐다봐주지 않은 적도.





직장을 들어가기 전 이력서를 여러 군데 쓸데만 해도 

"내가 거기에 못을 박을 거야! 나는 잘할 자신 있어!"

이렇게 선전포고를 하지만 막상 들어가면 세 가지 이유 중 하나로 그만두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직종도 여러 번 바꿔봤다.

경영 사무직부터 병원 그리고 짧지만 계약직으로 일했던 공공기관까지.





그런데 올해 6월까지 일한 회사는 내게 남다른 회사였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첫날 원장님은 처음 본 내게 "첫인상이 좋아요"라는 말과 함께

따뜻한 미소를 지으셨고 속으로 합격일 것이다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일주일 후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내가 일할 병원은 새로 만들어지는 신생병원이었으며, 합격소식을 받고도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아 한 달 후 출근하게 되었다.





출근시간은 열 시였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홉 시 삼십 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청소를 하고 계신 동료들을 도와 열심히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쌤, 쌤이라고 불러도 되지? 잠깐만 일로 와봐"



"네, 이것만 하고 갈게요"



"저는 그만둬요, 빠르면 이번 주까지만 하고요. 자세한 내막을 쌤도 겪어보면 알겠지"



왜요?라고 묻지 않았다. 나는 사실 내가 겪지 않는 한 남의 말을 믿지 않는 편이다.




나의 경우 전에 다니는 직장에 인수인계를 하고 왔어야 돼서 병원이 오픈하고도 이주가 지나서 들어오게 되었고

그 안에 많은 일이 있었다고 다른 동료를 통해 듣게 되었다.




내가 가장 걱정되는 일은 그만두는 쌤을 대신해서 혼자서 이 많은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쌤은 정확히 4일 후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큰소리와 함께.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걸 좋아하는 터라  먼저 다가가 동료들에게 인사를 했고 일주일이 지나자 동료들도 내게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독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나만의 방식을 만들려는 내게 "그건 아니지 쌤. 왜 멋대로 그래요?"

2년의 병원 경력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자기가 다닌 병원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이래라저래라 토를 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폭탄이 터지게 됐고 그날이 바로 내가 이 병원에 온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된 날이었다.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점심시간. "이거 누가 이렇게 했어? 내가 이렇게 하지 말랬자 나? 제정신이야?"



선을 너무 넘어버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반말까지 해버리니 눈에 뵈는 게 없어져 버렸다.





"말이 심하네, 너 따라와 봐"

나는 흥분해 호흡이 불완전한 상태로 조목조목 따졌고 그녀는 심하게 빡쳐(이보다 강력한 단어는 없다.)보였다.





퇴근할 때까지 한 번도 우린 마주치지 않았고 퇴근 오 분 전,

그녀는 원장실로 들어가 원장님과 대화를 오랫동안 나누었다. 물론 우리는 그 덕분에 아무도 퇴근을 하지 못한 상태로 말이다.




딸각,

얼굴이 한결 편안해진 그녀는 우리를 향해 "앞으로 저 실장이에요. 원장님이 그랬어요. 아! 명찰도 만들어야겠다."

(원장님을 잘 구워삶은 듯한 결과물)



나는 그렇게 상또라이같은 실장과 함께 일 년을 일했고 일 년 후 미련 없이 나오게 되었다.




몇 달은 편하게 늦잠도 자고 못해본 다이어트도 실컷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직장을 알아봤다.

여러 군데 회사에 지원서를 내며 내가 전에 다닌 직장보단 낫겠지라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냈고

몇 군데에서는 최종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서 정규직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전 직장에서 쏟은 지라 그만큼 일할 자신도 아직은 생기지 않았다.





매일 저녁 워크넷을 둘러보던 와중 공공기관 계약직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잠은 포기한 채 이력서를 작성해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면접을 봤고,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라고 해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게 꿈을 꾸는 듯 순식간에 일어났다.





알 사람들은 알듯이 계약직 직원에게는 주어진 업무가 없다. 다른 직원들의 업무를 나눠서 도와줄 뿐. 

그리고 제일 중요한 워라밸은 확실했다.





어떤 사람은 내게 서른이나 먹었는데 아직도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일하면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럼 나는 별거 아니다는 식으로 대답한다.

"부담이 덜 하잖아요, 주인의식 또한 남다르게 가질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행복이 별건가요? 저는 계약직도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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