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세번째 기일에 부쳐

by Justitia

2022년 오늘, 나는 예비 사위인 벤의 초대로 남편과 둘째와 함께 벤이 하게 될<프러포즈 여행>을 떠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하루전에 한국의 요양병원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오래 버티지 못하실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고 그저 이 여행을 지켜 주십사하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맞닿아 있는 바닷가 펜션에서 핑크빛 감성에 젖어있는 아이들과 가을의 바다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와의 풀지못한 기억들로 힘들어 했다.


그렇게 5박의 여행을 끝낸 마지막날 밤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새벽에 나는 네덜란드에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해외에서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돌아가셔도 갑작스러운 사고가 있어도 우리에겐 최소한 이틀의 시간이 필요하다. 티켓팅하고 공항에 가서 한국의 고향에 닿기 위해서는.


이미 시아버지의 상을 한번 겪어본 나로서는 일정을 맞출 수 없었던 가족들과 공항에서 작별하고 혼자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고 공항에 나와있던 친구의 차를 타고 고향의 장례식장에 도착할때까지의 긴 시간을 견뎌야 했다.


뒤늦게 도착할 나를 위해 마지막 아버지와의 접견자리를 마련해준 장례식장의 배려로 수년만에 뵙게된 아버지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었고 그 모습에 나는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한국방문에서 추어탕을 드시고 싶다던 아버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던 둘만의 식사자리가 떠오르고 그때의 꼿꼿하시던 아버지의 기억과 너무나도 다른 시신의 손을 붙잡고 내가 절규했던 이야기는 뭐였을까?!


"아버지! 이렇게 가시면 안돼요.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셨어야지..나는 아직 아버지 용서하지 못했는데.."


그랬다. 내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저 소리가 튀어 나왔고 그렇게 울다가 끝내 작은 뇌출혈의 조짐이 보이는 극심한 두통으로 급하게 처치를 해야 했었다.


코로나로 보지못한 몇년새 아버지는 급격히 여위어 계셨고 설상가상으로 파킨슨병이 악화가 돼 돌아가시기 2-3년 전부터는 짧은 통화도 할 수 없었기에 변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은 내게 있어서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되고 말았던 것일까..


우리 집안의 굴곡진 가족사로 인해 나는 아버지께 돌아가시기전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미안했다라는 그 한마디를 꼭 듣고 용서해 드리고 싶었는데 끝내 막내딸과의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가신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안타까워서 그렇게도 울었나보다.


"아버지! 4남매의 막내로 어릴때는 당신의 기대와 예쁨을 한껏 받았던 제가 당신이 가시고 3년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시지요?


당신의 또다른 딸이자 9살 차이가 나는 우리 집안의 자랑거리이자 기둥이었던 당신의 장녀를 형사고소를 했고 내 모든 분노와 억울함과 간절함으로 3년만에 부모님이 빼앗겼던 것들을 찾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그 이야기들을 해볼까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브런치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