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세번째 기일을 그리며
세번째 기일을 맞는 동안 나는 우리 조상님들의 선견지명에 다시한번 감탄을 했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상을 하시던 그 깊은 뜻을 나이 60이 되어서 내가 겪어보니 알겠더라.
만 3년이 되니 그나마 절절한 그리움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것 같아. 잊혀지는게 아니라 뭐랄까..그리움을 자제할 힘이 생긴다고 할까? 하지만 여전히 블쑥 치솟는 죄스러움과 보고픔에 나도 모르게 '엄마'를 연달아 부르곤 해. 지금 이순간처럼.
구순을 눈앞에 둔 아버지께서 오랜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시고 한달반만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신 엄마의 부고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어.
아버지의 부고로 이틀이 걸리는 거리를 비행기로 날고 차로 장거리를 가면서 고향의 장례식장에 가서 정해진 순서대로 발인을 하고 혼자 남으신 엄마랑 오랫만에 시간을 보내면서
한국에 있는 형제들의 숙원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홀로계신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기 위해 총대를 매야 했어.
그게 내 유일한 효도라고 생각했고 오랜시간 떨어져 살았던 죄책감의 작은 보상이라는 형제들의 압박에 그래야 하는줄 알았어.
생각같아서는 독일로 모시고 싶은 마음 간절했는데 우리의 경제적인 빈곤이 현실이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
그때 만약 아버지가 남기셨던 유산에 대한 형제들의 솔직한 토로가 있었다면 나는 두말없이 엄마를 모시고 갔을거야.
한국의 현실을 모르던 나는 형제들의 수고로움이 마냥 죄스러워 그들의 노고를 덜고 함께하지 못하는 내 죄책감을 덜고자 요양원이라면 학을 떼시는 엄마에게 울면서 윽박질렀지.
"엄마가 요양원에 가지 않으시면 내가 독일로 갈 수가 없고 가더라도 발뻗고 잘 수가 없다"라고. 그렇게 난 마지막 불효를 저질렀어.
아픈 손가락이었던 막내의 울부짖음에 엄마는 며칠밤을 우시면서 주변정리를 하시고 내손을 붙잡고 고향에서 가장 좋다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자연친화적인 요양원에 대한민국의 유명인사였던 형부덕에 최단시간 입소를 하셨어.
그리고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가 준비한 위로여행까지 마치고 출국하기 전날..엄마는 나의 출국날짜만을 세고 계시다 면회갔던 큰오빠의 차를 타고 외출을 하셨고 그길로 탈출을 하셨어.
그리고 출국전날 밤 나의 언니되는 우리집 장녀는 다시 나에게 출국을 미루고 엄마를 설득하라는 오더를 내렸지만 밀린 생업과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비행사측의 대답으로 무거운 마음가득 안고 일단 독일로 돌아왔어.
그리고 보름동안 단 한번의 통화밖에 할 수 없었고 오랜 지병인 허리병으로 거동도 불편하신 엄마는 계속 외출을 하셨다고 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만의 '세상과의 이별'을 하셨던것 같아.
내가 독일로 돌아온 날이 11월 3일 이었고 11월 20일날 유난히 날씨가 어둡고 흐리던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밍기적대고 있는데 형부되는 이의 전화를 받았고 왠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던 순간에 "놀라지마! 엄마가 돌아가셨어"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침대위로 솟아 올랐어.
"왜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내 소리는 악이 되어 온 집안을 울렸고 난 믿을 수가 없었어.
요양원에 가시기전에 내가 직접 모시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다녔기 때문에 엄마의 건강상태를 알았거든.
"83세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병이 없으시고 건강하시다"고 의사쌤도 놀라워했어.
그런데 그랬던 내 엄마가 그리 허망하게 목숨줄을 놓으시다니..그것도 마지막 본 큰오빠의 말에 의하면 마지막날 저녁에도 의사소통 가능했고 다음날 다시 보기로 약속하고 왔는데 주무시듯 가셨대.
집에서 돌연사 하신 분들은 경찰조사가 필수라 정해진 수순에 따라 조사가 진행되었고 언니와 오빠의 뜻으로 부검은 실시되지 않았대.
막내의 뜻같은 건 물어보지도 않았고 바로 장례절차가 진행되었지.
결국 원인불명의 돌연사로 사인은 정리되었고 내 엄마는 나를.. 보지도 못하고 가셨어. 나는 다시 보름만에 역시 독일에 살고있는 조카를 의지해 엄마를 보러갔고 그렇게 허망하게 엄마를 마주했어.
내 소원은 단 하나였는데..25년을 엄마곁에 살다가 30년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머나먼 타향에서 얼마나 그리워하고 원망하고 뼈에 사무치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저 단 1년이라도 살을 맞대고 잔소리 들어가면서 육친의 정을 나누고 싶은 단 하나의 오래된 소원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차가워진 엄마의 얼굴을 마주해야 했어.
엄마의 발인날 나는 죄스러워 차마 곁에 가지 못하고 엄마의 발치에 서있는데 염을 해주셨던 분께서 갑자기 "막내 어딨어요? 막내 나와서 엄마랑 인사해요"라는 말씀에 얼결에 엄마의 머리맡에 서게 됐어.
그리고 나는 그자리에서 믿지못할 기적을 경험하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