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상의 철학적 멘토들 2

국민윤리 선생님!

by Justitia

어린 시절 다독으로 인해 이르게 만난 첫 번째 철학적 멘토인 전혜린의 영향으로 우울한 감성의 비관론에 푹~ 빠졌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사춘기의 미친 파도를 만나게 되었어.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했던 찰리 채플린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라서 거부한 게 아니라 그즈음의 나의 가족사는 흑백이 뒤섞인 회색의 시간들이었기에 어린 내 인생은 가까이서나 멀리 서나 비극이었고 나는 점점 말세론에 가까운 비관론자가 되어갔지.


그런 시간들에 열여섯 소녀는 국민윤리 선생님이자 교무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셨던 그분은 외모부터가 범상치 않았지.


큰 키에 구부정한 어깨, 검은 금테안경에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깊지만 날카로운 눈빛, 왼쪽 옆구리에는 늘 두꺼운 철학책들과 오른쪽 손에는 얇고 가느다란 지휘봉을 들고 복도를 지나다닐 때면 왠지 모를 지성의 아우라가 풍겼고 그분은 자주 우리가 하는 인사에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았어. 늘 다른 곳을 보고 계셨거든.


철학을 전공하셨고 계속 공부 중이셨던 선생님덕에 우리는 고등학교 수준의 국민윤리를 배우기보다는 대학생 수준에 맞는 철학수업을 듣게 되었고 다시 나는 수준초과의 책들과 철학자들을 알게 되었어.


불과 중학생 때 언니방에 있던 전혜린의 책을 훔쳐 읽고 그녀의 비관론적 세계관을 흠모하던 나는 다시금 여고시절을 윤리 선생님의 수준 높은 강의로 니체와 니체가 영감을 받았지만 걸국엔 "나약한 비관론자"라고 비평했던 쇼펜하우어를 비롯 일반의 여고생들이 소화시킬 수 없었던 철학자들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지.

돌이켜보면 참으로 충만한 시간들이었어. 어린 소녀의 정신세계를 채우기에는.


하지만 말똥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던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에는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버겁고 어려웠던지라 그분의 수업시간에 힘들어하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유독 눈을 반짝이던 몇몇 아이들 중의 한 명이던 나를, 늘 먼 곳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음에도 우리를 눈여겨보시던 그분께서는 허투루 보지 않으시고 틈이 나면 교무실로 불러 철학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지.


그럴 때면 복도에서 아이들이 인사할 때 허공을 헤매던 눈빛이 아니라 본인의 철학에 대한 강의를 들어줄 대상을 찾은 그 눈빛은 너무도 반짝였고 때로는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었음에도 그 열정적인 강의에 나 역시 진심으로 들었고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썼어.


훗날 뒤돌아 보니 고1학년과 2학년, 2년을 그분께 배우면서 우리 학교 국민윤리 시험은 어느 학교보다 어려웠고 수준이 높았을 거라 생각이 들어. 수업시간에 들었던 그분의 주력분야얐던 철학에 대한 문제들이 태반이었거든.


그분 역시나 철학적인 견지는 비관론자에 가까웠고 약간은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계셨어.


1. 사춘기 소녀였던 우리들을 누군가 허락 없이 산으로 데리고 간다면(우리 학교는 고향에서 유명한 산자락 밑에 위치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목사님이나 스님이리 한다면 본인은 절대 믿을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단 하나의 예외로 신부님은 믿는다고 하셨지.

참고로 선생님은 철저한 무신론자라고 늘 말씀하셨고 더욱이 우리 학교는 지방을 토대로 번성했던 토속종교를 재단으로 하는 학교였고 선생님은 교무선생님이라는 직함까지도 맡고 계셨지만 전혀 개의치 않으셨지.


2. 나는 오랫동안 피아노를 배웠고 음대 지망생이었어. 그 당시만 해도 지방의 여고에서 예체능 지망생이 된다는 자체가 드물었을 시절이라 자연스레 모든 선생님들이 알고 계셨지. 학교성적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탓일까? 아니면 고1 때 전교생을 상대로 실시했던 아이큐 테스트의 수치 때문이었을까? 졸지에 나는 머리 좋은 예체능 지망생이 되어 있었고 선생님은 나의 음대진학을 매우, 몹시 적극적으로 반대하셨어.


"왜? 그런 머리로 음대를 가려하느냐"는 이해가 선뜻 되지 않는 이유로 수시로 나는 교무실에 불려 가서 설득을 당하기도 했어. 그리고 나는 선생님의 차별적이고 이중적이며 세속적인 논리에 처음으로 반발을 했지.


고 3 초반에 결국 나는 선생님의 설득이 아닌 나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음악을 접고 방향전환을 했지만 존경하던 선생님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큰 혼란이 왔던 것도 사실이야.


나는 인간의 평등을 심오한 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파하시던 그 모습과 다른 너무도 세속적인 선입견과 편견들에 사로잡힌 선생님의 이중적인 내면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미성숙한 소녀였기에.


선생님께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배웠음에도, 그 영향으로 아직까지도 나는 쇼펜하우어의 비관과 그에게서 배웠지만 비극적 낙관론자가 될 수 있었던 니체를 모두 사랑하게 되었음에도 정작 어린 소녀에게 철학의 본질과 철학자의 자세를 알려 주셨던 선생님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몰라 외면하게 되었어.


하지만 내가 철학적 사고를 논리적으로 시작하게 된 바탕에는 분명 선생님이 계셨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없지.


그리고 여고를 졸업하고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다시 나는 법철학을 공부해야 했었고 우연하게 운명처럼 철학강사로 선생님을 만나 미뤄두고 있던 선생님의 정체성을 내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고 짧지 않은 대화 끝에 그분을 내 인생의 두 번째 철학적 멘토로 정하기로 했지.


그 우연한 만남에서 선생님은 본인의 선입견과 편견을 쿨하게 인정하셨고 헤겔과 스피노자를 통해 낙관에 이르게 되셨노라 말씀하셨고 본인이 여고의 국민윤리 선생님이었던 시절에는 철학자보다 사상가가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자기 성찰을 하시더라고.


그리고 나 또한 그즈음에는 <철학자>란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는 작은 깨달음 정도는 얻고 난 후라서였을까.. 선생님의 성찰을 수용하게 되었지. 보다 편견 없이, 선입견 없이 말이야.


그렇게 나는 스무 살의 나이에 철학의 두 번째 멘토를 가슴에 품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내 삶의 세 번째 철학적 멘토를 만나기 위해 독일행을 택하게 되었지.






작가의 이전글내 사상의 철학적 멘토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