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쇼펜하우어
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초등학교 이전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 같아. 왜일까? 첫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아주 어렸을때 몇살인지도 모르지만 하얀 옷들을 입고 아이고를 외치며 걸어가는 어른들 사이에서 엄마를 불러대며 본능적인 공포로 가슴이 터질것 같던 잠깐의 기억
엄마 말씀에 의하면 그때가 두살 무렵이었고 외할아버지의 장례가 치뤄지고 상여를 산으로 운반하는 과정이었대. 그래서 일가친척 분들께서 아이고를 외치며 상여를 따라가던 중이었고 막내인 엄마는 나를 떼놓고 앞에 가시다가 죽을 듯이 울어제끼는 나때문에 결국 상여를 따라가야 함에도 주윗분들의 만류에 나를 안아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시곤 했어.
그런데 그때의 기억은 이제 60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 공포감도 생생하지.
그리고 또하나의 잔상..
우리집 길건너에는 우리 형제들이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었고 바로 앞에는 교회가 있었는데 교회에서는 저녁 6시가 되면 종을 울렸지. 어느날 부터인지 기덕도 나지 않지만 아주 어릴때부터 그 종소리를 들으면 내가 눈물을 흘렸대.
나는 딱 한번의 기억이 나. 엄마 무릎을 베고 있다가 들리는 교회 종소리에 느닷없이 일어나 엄마에게 자꾸만 눈물이 나 하고 울어버렸던 꼬마의 모습이.
태어나기를 초예민 성격으로 태어나서 였을까?
애기때 할아버지 상여를 따라가던 사람속에서의 공포가 나도 모르게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어서일까..
나는 지나치게 심각했고 어린 나이부터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4남매의 늦둥이로 거의 혼자 크다시피 했던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탔고 그 외로움을 책으로 달래고자 책에 집착을 했지.
정말 닥치는 대로 활자화 된 것들을 읽었어. 내 나이에 맞는 책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었지.
그래서 조숙한 독서를 하게 되었고 중학교 무럽에는 집에 있던 세계명작이며 심지어 가정 대 백과사전까지 읽고 나니 다음은 대학을 다니던 언니방에 있던 철학책들과 에세이들이 나의 표적이 되었지.
그때 나의 첫사랑이 된 전혜린의 책과 그녀의 비관론적 세계관에 빠져 쇼펜하우어를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 국민윤리 시간에 듣게 된 쇼펜하우어와 니체에게 몰입을 했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사춘기에 접어든 어린 철학자를 열광시켰고 그의 제자격인 니체의 초인에 대한 개념은 완전 동의는 못하지만 한줄기 다른 빛을 주었어.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엄마의 강렬한 소망대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하루에 4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연습을 했어. 그런데 아무리 해도 그 길은 내 길이 아닌것 같더라.
연습할때는 잘만 흘러가던 의식의 흐름이 대회에만 나가면 머릿속은 하얘지고 암기는 머리가 아닌 내 손이 하고 있더라고. 심지어 어떤 날에는 페달을 밟아야 하는 오른쪽 다리의 떨림으로 연주를 할 수 없게도 되고.
촉망받던 아이는 차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없어. 그게 바로 무대공포증이었는데 말이야.
나는 엄마의 못 다 이룬 꿈을 이어받아 실현해야 했던 무거운 책임을 진 사람이었기에 더욱 더 엄마를 배신할 수가 없었고 여고생이 되어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지.
그런데 그때 예술은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마취제라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내게로 와 꽂혔고 나는 핑계인지 나의 사상인지 알아 보지도 않고 피아노에서 벗어났어.
그리고 끊임없의 나의 음대진학을 만류하며 쇼펜하우어를 이야기 해주시던 윤리선생님께 감사했지.
물론 그 안에는 또다른 편견과 선입견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던 내 독단이 커다란 역할을 차지했고.
그렇게 나는 쇼헨하우어의 부정과 고립.금욕과 염세주의를 사랑했고 앙모했지
그렇게 고 3이 되면서 나를 둘러싼 부정적인 상황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나니 쇼펜하우어의 제자격이지만 결국 쇼펜하우와는 다른 철학적 결론을 멪은 니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
쇼펜하우어의 행복의 3요소는 인격과 소유물 그리고 타인의 평판이지. 지극히 세속적이라 할 수 있는..
그는 인생을 결핍과 충족의 쳇바퀴로 보고 인생에 대해 아주 냉소적인 견지를 유지했지.
나도 이게 맞다고 생각했어. 그때까지 나의 성장 배경이나 부모님의 교육관이나 인생철학들이 그에 딱 부합했거든. 거기에 더해 올라가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아버지의 성공을 향한 인생관은 너무나도 견고했거든.
그리고 나는 그에 걸맞는 법학도가 되어 쇼헨하우어의 추종자 다운 길을 걷게 되었는데 대학에 가서 나는 수많은 니체의 후손을 만나게 된거야.
내가 다녔던 8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 대학은 니체가 되지 않고서는 극복할 수 없는 격동의 시간들이었어.
나 역시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한 현실에서 쇼팬하우어의 염세주의는 파국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니체와 함께하기 시작했지.
그렇게 내 대학시절은 염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교차점이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