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44
-연애나 하라는 말에 대하여

by 월영

기혼자들이 미혼인 이들에게 자주 혹은 부러운 듯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그럼 연애라도 하면서 살아. 그 말의 뒤에는 딱히 배우자도 없는 상황에서 연애도 못하고 사냐는 힐난과 동시에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또한 기혼이라는 경험적 우위를 바탕으로 연애란 게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라는 약간의 우월감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연애’란 기혼이든 미혼이든 간에 하면 좋은 것이란 전제도 깔려 있다.


연애하듯 결혼생활 하는 부부는 사실 부부들의 로망이기도 하고 미혼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연애라는 게 저마다 정의가 다르겠지만 대략 방향은 같을 것이다. 상대가 있어 내가 설레고 약간은 불안하고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만지고 싶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 둘 사이에 다른 문제가 개입하지 않고 오직 둘 만의 소통으로 세상의 다른 문제들이 부차적으로 되는 과정 내지 그런 상태.


여기에 그 상대로 인해 시간은 세상의 시간에서 그 사람과 내가 함께하는 시간이 독립적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차츰 나의 상상력의 대부분이 상대의 일상과 혹은 나와 그 사람이 함께 하는 시공간으로 무한 확장한다. 그 확장은 결과적으로 마취 상태로 이끈다. 마취란 이성적 인식의 마비. 세계의 숱한 개별적 시간과 서사는 나와 무관해지기 시작한다. 즉 연애는 그대와 나만 동시간 안에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시간의 바깥에 있는 일이다.


둘이 공유하는 시간을 만드는 일. 시간의 공감대를 유지하는 일이 실은 연애의 핵심. 따지고 보면 사람은 같은 시간 안에 살지만 저마다의 서사가 있고 저마다의 시간표가 있고 저마다의 리듬이 있다. 사주가 같은 사람끼리 인생이 같지 않은 이유고 설사 훗날 복제인간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개인이 다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간의 서사만큼은 저마다 달라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대상을 보는 것 같지만 사람마다 키나 시력이나 눈 깜박임에 따라 미세하게 시간차가 생긴다. 해서 사람은 저마다 개별적이고 단독자. 외로움이란 결과적으로 시간차를 자각하는 인간 본래의 특성은 아닐까? 그리하여 연애란 그 시간차를 잊기 위한 뇌의 화학작용이고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지니는 본능일수도 있고 또 인간 이성의 발달에 따른 고도의 심리적, 심정적 상호작용일 것이다.


‘연애라도 하면서 살아’라는 기혼자들의 말을 들을 때 실은 결혼제도나 부부라는 관계가 가진 특정 영역의 한계를 본다. 실생활에서 시공간을 함께 하는 부부들이 정작 연애라는 관계를 갈망하거나 희구한다는 느낌. 이는 부부가 되었을 때 맞이한 숱한 실생활의 선택과 역할 속에서 정작 둘만의 시간이 휘발되었다는 증거다. 둘이 공유하는 시간, 즉 연애라는 건 애초 그저 나, 그저 당신이라는 본래의 모습으로 서로를 만나고 마주보고 소통하거나 합일를 위한 것이었다. 각자 맡은 역할로서의 ‘누구’가 아니라 그저 본인의 모습으로. 다른 이에게 쉽게 보여주지 못했던 그저 나의 모습으로 서로를 만나고 보듬고 쓰다듬는 일.


때문에 연애는 그렇게 쉽게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수 있다. 설사 기간이 짧더라도 그 동기는 진지해야 한다. 동기가 진지하다는 건 ‘연애의 끝은 결혼이다’에 앞서 당신과 내가 서로 시간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어떤 나 혹은 어떤 당신이 아닌 그저 본래의 나와 본래의 당신이 만나 너와 나는 서로 만지고 보듬고 아껴주고 싶은 그저 같은 인간이란 교감 속에 잠시나마 단독자로서의 외로움을 잊어보겠다는 상호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연애가 설사 이별로 종언을 한다 해도 서로의 삶을 파탄내거나 한 사람의 열패감, 상실감 혹은 배신감으로 남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기혼자들에게 하면 비슷한 반응이다. 그러니까 네가 결혼을 못하는 거다. 그 말에 딱히 반박하지 않는다. 다만 속으로 몇마디 한다. 제발 아내와(혹은 남편과) 연애하세요. 괜히 미혼들의 연애에 관심 가지지 마시구요. 행여 미혼과의 연애에 가슴 부풀어 오르셨다면 혼자만 간직하시고 뒷감당도 혼자서 하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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