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47
-일이 자식 같다는 의미

by 월영

“그 결과들은 자식과도 같은 거예요. 어찌 보면 자식과 맞바꾼 것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라는 단어를 당신과 나 단 둘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놓고 이야기를 나눴던 일은 어느덧 과거 종료로 남았다. 몇 해 전 겨울 진눈깨비가 날리던 밤에 “우리는 여기까지 에요”라는 말과 함께 당신과 나를 하나로 묶었던 그 단어는 용도가 사라졌고 그저 자음과 모음으로 분해되어 녹아버렸다.


인생에서 한 번도 결혼을 우선순위에 둔 적이 없었다는 그 사람은 꽃샘바람이 지고 5월의 라일락이 필 때쯤 내 손을 잡으며 “당신 때문에 너무 고민이에요”라고 했다. 같이 산책하던 공원이 아이들이 뛰어놀며 지르는 환한 웃음소리로 찰랑거리던 저녁 무렵이었다.


그 사람과 나는 함께 ‘우리’의 앞날을 고민했다.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정하지 못했지만 어느 하나 결단을 내리지 못했지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삶의 계획이 구체적이었던 그 사람과 인생을 막연하게 흘러가는 대로 살려는 나와는 남자와 여자, 이성의 차이 외에 또 다른 차이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일에 대한 가치관이었다.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나는 직장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다. 조직에서의 일이란 일을 하는 사람의 정서나 감정을 헤아리지 않는다. 조직에서의 일이란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바쳤을 때 잠시나마 나를 인정할 뿐 결국 나를 더 활용하고 소모시키기 위해 점점 더 큰 올가미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 과정이라고 했다.


물론 사명감은 있다고 변명했다. 사명을 느낄 수 있는 일만큼은 주저 없이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회사의 모든 일이 사명감을 가지기에는 종종 비루하다고 투덜거렸다. 어느덧 십여 년 이상 같은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일에 대한 심리적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던 때였다. 한때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었다고 그 사람에게 말했지만 그 역시 무언가 구차했다.


조직에 속하지 않고 일을 하는 그 사람에게 일은 생존 자체라고 했다. 오직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남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여자 나이 서른 후반.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포기하고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을 시기. 남자는 그렇지 않지만 여자는 결혼을 하면 불가결하게 ‘중단’이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일이 자식 같다는 의미를 아마도 모를 거예요. 남자들은요.”


자식 같다는 말. 그 말의 중량감이 남자와 여자에게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정녕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을 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설사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다른 현실에 놓여있었을까?


돌이켜봐야 부질없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만큼은 이제 확실히 안다. 이런 사실을 당신이 알리야 없겠지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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