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48
-그 빈자리 마다

by 월영

현시점을 기준으로 생존 자체에는 별 문제없다. 먼저 생계를 유지하는 밥벌이가 그렇다. 밥벌이를 하는 데 건강이 방해하는 상황은 아니다. 사회 초년병 시절과 달리 직장에서의 업무도 귀찮거나 귀찮지 않거나 혹은 열심히 하거나 대충 하거나의 선택일 뿐 업무가 몸에 익지 않거나 요령이 없어 고생하던 시기는 지났다. 직장을 포함해 주변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도 많지 않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전보다 작아졌고 나 또한 이른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적당히 속물적이고 이기적이며 남을 이용하진 않아도 남을 속이기는 하는 인간이란 걸 능히 인정해서다.


회사가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1~2년 안에 문을 닫거나 월급이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회사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내 집이 있고 최소 몇 개월은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처음 직장생활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자산 규모를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통장 잔고에 50만 원도 없던 15년 전과 비교해보면 지금은 거의 사치스러운 생활이다. 자동차 보험료로만 1년에 70만 원은 부담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호텔 코스 요리가 아닌 다음에야 별 고민 없이 먹을 수 있다. 100만 원이 넘는 가전제품도 별 고민하지 않고 산다.


심리적으로 봐도 난감한 상황이 없다. 20대와 30대 초반 때처럼 술을 마시고 지인들에게 괜히 전화를 걸어 주정을 한다던가 나도 모르는 욕정이 치솟아 남몰래 주먹을 꽉 쥐는 일도 몇 년 전부터는 사라졌다. 어떤 이성을 보고 괜한 설렘에 혼자서 마음앓이를 하거나 소설을 쓰는 경우도 없다. 더러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고 다행히 가까워지고 싶었던 이들과는 두루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 왔다.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한 온라인 관계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상황은 없다. 무엇보다 가족들 모두 무탈하고 각자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고 있다. 집안에 우환이라 할 만한 일도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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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도 되돌아보니 대부분 해왔다. 한창 등산에 취미가 붙었을 때 주말이면 훌쩍 지리산을 다녀왔고 사시사철의 설악에 올랐으며 눈 내린 한라산 백록담을 보고 왔다. 텐트를 매고 떠나 산이나 섬에서 잔 것도 수십 회. 자전거에도 흥미를 느낄 때는 로드바이크와 미니 벨로, 폴딩 벨로 3대를 번갈아 타면서 내 몸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기저기 잘 타고 돌아다녔다. 유년 시절의 로망이었던 서가를 꾸몄고 읽고 싶은 책은 사놓고 읽지는 않을지언정 두루두루 구비했다. 새 차를 사 본 적은 없어도 중고로 여러 번 차를 바꾸면서 관심이 있던 차들은 또 몰아봤고 지금 가지고 있는 차 또한 지금으로서는 아쉽지 않다.


가고 싶던 외국도 얼추 다녀왔다. 이십 대까지는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못했지만 따지고 보니 지난 10여 년간 매해 한 번꼴로 공항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따로 모시고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홀로 훌쩍 유럽과 일본에도 짧게나마 발자국을 찍고 왔다. 그리고 운 좋게 소통의 밀도가 높았던 연애도 했었다.


이렇게 찬찬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두서없이 내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점검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맘때면 통제가 힘들어지는 감성 내지 감정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재 내 일상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고 무탈하며 자유롭고 개인적인 걱정은 없다. 머리로는 이렇다고 인식하면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성적 허기와 무언가에 닿고 싶은 바람이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그 출렁거림을 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글을 쓰면서 마음의 혈기를 한 틈 한 틈 눌러 진정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못난 탓이 아님을 상기시키기 위해 기도를 하듯, 주문을 외듯 속으로 자주 주절주절거린다.


“가을이구나. 가을이구나, 벌써 가을이구나”


여름이 몸을 가리기 시작하는 8월의 하순. 홀로 사는 사람만이 이리 청승을 떨지는 아니할 것이다. 가을은 4계절 중 유일하게 자연의 보이는 곳곳마다 빈자리가 생기는 계절. 그 빈자리마다 귀뚜라미가 저마다 사연으로 울기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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