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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60
-예쁘고 매력적이지 않았더라면

by 월영

외모를 평가하는 말에 조심스러운 편이다.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예쁘다. 몸매 좋다. 아름답다. 섹시하다. 미인이다 등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써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남자들끼리 있는 사석에서도 별로 입에 담지 않는 편이다. 물론 눈을 떼지 못하겠더라. 내가 비상시에 업고 달리기에는 곤란할 거 같다. 여럿이 있는데 단연 돋보이더라. 등등의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외모를 평가하는 말이나 표현에 아예 관심이 없지는 않다. 가령 누군가 소개팅을 해준다고 할 때 상대가 예쁘다고 하면 속으로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 외모에 대한 말이 없으면 마음을 비운다. 외모를 평가하는 것에 이중적인 속성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어쩌면 대놓고 예쁘다, 못생겼다. 등등 외모를 평가하는 이들에 비해 위선적이거나 엉큼할 수 있다.


고양이 입양을 고려하면서 ‘미묘’라는 말을 많이 접했다. 한마디로 외모가 뛰어난 고양이에 대한 예찬이 넘쳐났고 그것의 대표적인 말이 바로 ‘미묘’였다. 유기된 고양이를 입양하는 사이트 안에서도 입양처를 구하는 임보자(임시보호자)들은 각자 고양이의 외모를 강조하는 표현을 많이 썼다.


지켜보니 인간의 눈에 예쁘게 보이는 고양이일수록 입양될 가능성이 높았다. 또 ‘아니 저렇게 엄청난 미묘가 왜 버려졌을까요?’라는 식의 댓글도 숱했다. 반대로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고양이들은 확실히 주목을 덜 받았고 입양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쏭이를 데리고 오면서 나 또한 고양이의 외모를 따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기 고양이가 아닐 것, 얌전한 고양이일 것. 유기된 고양이일 것 등 나름의 조건을 놓고 계속 탐색을 했지만 그 전제는 확실히 예쁜 고양이였다. 몇 달간 여러 유기묘 입양사이트에서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올라오는 유기묘를 보면서 일차적으로 외모를 놓고 저울질했다. 그리고 사실 내 눈에 가장 예뻐 보였던 그리고 남의 눈에도 충분히 예뻐 보일 것이라 확신했던 쏭이와 인연이 닿아 결국 한 집에 살게 됐다.


쏭이를 데려다 놓고 녀석이 지닌 외모에 많이 감탄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자랑했다. 그 이면에는 ‘나 이렇게 예쁜 고양이의 주인입니다’라는 자부심 내지 자랑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자부심과 자랑은 또 사람들의 인정. 감탄, 부러움을 보면서 강화되고 일정 부분 간사한 정서적 우월감을 충족시켜주었다.


만약 쏭이의 외모가 많은 이들이 보기에도 예쁘고 매력적이지 않았더라면 나는 쏭이를 데리고 왔을까? 뭔가 자랑하고 싶은 대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그 우월감을 배재하고 그저 생명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여 고양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을까? 이러한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여전히 감정은 그와 별개다. 쏭이를 더 자랑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내 일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그것이 지나치면 또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될 것이다. 사실 외모는 인간이나 고양이나 자신이 타고난 것이 대부분. 거기에 끌리는 것 또한 우리 유전자의 작용이겠지만 외모도 결국 그 안의 내면과 조화롭지 아니하면 한쪽이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과 어여쁨을 볼 수 있는 마음이 눈이 없다면 또 미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다행히 나이를 먹으면서 보이는 것 외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이른바 심안도 조금씩은 생기는 듯싶다. 그래서 한자에서 아름다움을 뜻하는 ‘美’를 보면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적 구조로 포개어질 수 있는 문자로 정립된 것은 아닌가 나름의 추정을 해본다. ‘미묘’와 함께 산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즈음에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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