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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63
-그 선택에 따른 죄책감을

고양이 동거기

by 월영

녀석의 과거를 모른다. 언제 태어났고 어디서 자랐으며 어떤 이들의 손길을 의지해 살았는지 아는 게 거의 없다. 지난 6월 초 길가에 유기가 된 채 상가 구석에서 길고양이들에게 상처를 입은 채 숨어 있었고 구조가 된 후 몇 군데 탁묘를 거쳐 우리 집에 온 지난 4개월간의 구체적인 상황도 내가 직접 옆에서 보고 겪은 일이 아니다. 나는 제삼자였고 입양 과정에서 간헐적으로 녀석의 소식을 몇 번 들은 것이 전부다.


녀석의 기억에는 과연 어떤 이들이 각인되어 있을까? 고양이도 사람을 알아본다고는 하지만 그 기억력이란 게 정확히 수치로 나온 것은 아니다. 분명 녀석을 따스한 손길로 쓰다듬었던 사람은 나 외에도 많았을 것이다. 적어도 탁묘를 하던 분들이 있었고 그 이전 녀석이 새끼였을 때부터 유기되기까지 몇 해 동안 어떤 이에게는 생의 또 다른 기쁨과 충족을 안겨주던 존재였다. 분명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고양이가 눈에 밟혀 출근길 혹은 등굣길에 애를 태웠을 태고 어떤 사료를 사다 줄까? 행여 어디 아플까? 기꺼이 고민하고 어느 날은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만약 그때의 기억을 녀석이 가지고 있더라면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인간과 달리 언어로 사고하지 않을 고양이는 자신을 버린 혹은 유기한 방임한 누구를 구체적으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고양이도 꿈을 꾼다니까 이미지로는 남아있을 수 있겠다. 그 이미지가 행여 나의 어떤 모습과 겹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는 영원히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다.


무구한 듯 빤히 쳐다보는 고양이의 눈길은 녀석만 특별히 그런 것이 아니라 한다. 대부분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은 주인이 귀가하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빤히 쳐다보는 게 일상이란다. 그러다 기분이 좋아지면 배를 내밀고 눕는다. 귀에서부터 목덜미, 머리 정수리 등을 쓰다듬어주고 손가락으로 긁어주면 가르랑 거리며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녀석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몇 번 궁리를 하다가 말았다. 고양이는 언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능에 의한 호불호로 움직이고 느끼고 그 자체가 일상이다.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치를 부여하고 판단하고 감정의 진폭이 달라지는 건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다.


녀석을 보며 떠오르는 상념은 상념일 뿐. 쓰다듬어주고 체온을 전해주고 끼니를 챙겨주고 무언의 교감으로 또 다른 생명체와의 공존에 따른 충만함에 충실하면 될 뿐이다. 아마도 그 충만함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녀석을 처음 키웠던 사람은 스스로 숨기고 싶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 선택에 따른 죄책감을 언젠가 어디에다 가든 용서를 빌었기 바란다. 그 마음이 진실하고 간절하여 또 녀석이 우리 집에서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간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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