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사로 간 후배녀석이 서른 아홉에 드디어 장가를 간다며 자기들 동기모임에 나를 기꺼이 불러주었다. 모인 다섯 명중 나만 홀로 40대, 나만 홀로 싱글. 처와 남편, 자식이 있는 기혼자들이 무슨 돈이 있겠냐며 호기롭게 1차 계산하려다보니 이미 후배녀석이 계산을 다했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는 부질없는 일이 떠올랐다. 만으로 마흔이 되기 전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과 함께 사는 인생을 꿈꾸고 준비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남달리 가까웠던 건 서로 대화가 잘되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사람과의 경계가 이렇게 얇아질수 있구나 놀라웠다. 역설적으로 말이 잘 통했기에 또 헤어지는 일이 그렇게 불가해하지 않았다. 이해를 할때까지 혹은 납득이 될때까지 서로에게 말하고 들었다. 어떤 원망이나 비참함 없도록.
만약 그 사람과 계속 인연이 닿아 서로 함께 살게 되었더라면 지금 어떤 인생의 궤도에서 어디를 향해가고 있었을까.
종종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결국에 홀로 살아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 외로움의 감정이란게 실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무언가 만지고 싶고 안고 싶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상태가 외로움의 전부는 아닐터이니까.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감도가 예민하지 않다. 그저 우리는 숱한 무엇 중에 하나이지 딱히 아주 대단한 존재도 아니다. 라고 적지 않이 되뇌고 상기해서다.
그 사람도 외로움의 감도가 나와 비슷했다. 홀로 있어도 꿋꿋했고 그 꿋꿋함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확신으로 다져놓은 오랜 삶의 태도였다. 만에 하나 둘 중 어느 한 명이 달랐더라면 또 지금의 내 일상과 다른 일상이 펼쳐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을은 가을인듯 싶다. 어디 산에가서 제대로 홀로 밤에 젖어보고 싶다. 정말 밤에 젖어본 사람들은 안다. 어두움이 때로는 얼마나 나와 다르지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