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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69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by 월영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영화 '엑스맨'에서 파란 몸매를 뽐내던 제니퍼 로랜스에게 불과 22세의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의 남녀 주인공은 각각 분노조절장애와 섹스중독을 겪는 이른바 정신병 환자들이다. 이들이 스스로의 아픔을 극복하며 사랑에 빠지는 것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 여주인공을 맡은 제니퍼 로랜스는 이 영화에서 특유의 발랄함과 내면의 균형으로 인생의 극한에서도 결코 삶의 생생함을 잃지 않으려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남자 주인공은 역사를 가르치다 아내의 외도를 현장에서 목격하고 불륜남을 폭행해 정신병원에 8개월간 입원했다가 퇴원한다. 여자 주인공은 경찰인 남편이 어이없는 사고로 순직한 후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남녀 가리지 않고 직장 내 모든 직원과 잠을 잔다.


영화를 보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제니퍼 로랜스와 상대 배우인 브래들리 쿠퍼의 호연보다 영화 속 두 백수들의 삶을 온전하게 버틸 수 있게 하는 미국 사회 내의 시스템이었다. 실업자 신세이지만 병을 치료하면서도 무리 없이 일상을 영위해나가지 못했다면 (게다가 댄스대회까지 나갈 수 있는)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알코올 중독 자조모임 같은 것이 발달되어 있다. 사실 정신병에 대해 한국보다는 편견이 덜한 사회다. 약으로 고칠 수 있다는 믿음도 있고 타인의 삶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라 그렇다고 믿는다. 물론 그 지역사회 안에서도 숱한 뒷말들이 인간 세상이다 보니 없진 않겠지만. 한국 사회보다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도 영화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의 바탕은 이른바 자기 객관화라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들었다. 나는 이런 상태이고 이러니 이런 증세가 있고 이걸 고치려고 하니 당신은 좀 이해해주고 도와주세요. 이런 자조모임의 기조는 결국 내가 어떤 상황이다라고 스스로에 대해 객관화된 진술을 하는 것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미국 문화이기에 보편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화 속 설정 때문인지는 미국에서 살아보지 않아 모르겠다. 허나 지금까지 숱한 미국의 영상물과 소설들을 보면 아마도 문화가 바탕이 되는 듯싶다.


개인이 치부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까발리며 “나는 어때 저때”라고 말하는 것을 한국에서는 금기시한다. 좋게 말하면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솔직하게 말했다가 소위 뒤통수를 맞는 경우나 약점으로 책잡히는 경험들도 많다. 사실 동양 문화에서 말을 많이 한다는 거 자체가 부정적이다. 오죽하면 남아의 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하지 않을까.


영화가 끝날 즈음 잠깐 정신의 병을 앓았던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져 치유하고 온전히 살 수 있던 그 미국 사회의 시스템에 갔던 시선은 엉뚱하게도 ‘소통’으로 튀었다. 두 남녀가 로맨스에 빠질 수 있던 근간은 서로 만난 이이후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상대의 의중을 물었기 때문이다. 수평적인 소통의 기본자세인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두 남녀는 서로 편견을 걷어내고 사랑에 빠진다.


홀로 사는 이들 가운데는 역으로 타인과의 소통에 대한 기대감이 남다른 사람이 적지 않다. 문제는 주변을 둘러보면 딱히 그런 관계들이 많지 않은 것 같고 또 그런 관계를 만들려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히러 내면의 역동성이 잦아들고 섣불리 누군과와 관계 맺기를 주저한다.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또 '나'라는 사실은 영화의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다행인 점은 이제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 '그런갑네' 하고 별다른 느낌이나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 두 개의 세상을 헷갈려하지 않아도 될만큼은 성숙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데 겪었던 시행착오들은 영화 속 두 주인공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꺼내기 민망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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