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동거기
퇴근 후 거실 책상에 앉아 소일한다. 집에 티브이가 없어 주로 노트북 열고 인터넷 서핑하거나 책 읽으며 맥주를 한 캔 마시는 게 보통이다.
그때 냥이 녀석은 책상 주변을 기웃거리며 야옹야옹 놀아달라고 보챈다. 하지만 녀석과 계속 놀아줄 수는 없다. 냥이와 내가 서로 언어로 소통을 할 수 없는 탓이다. 내가 녀석을 따라 냐옹 거려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고 녀석 또한 나의 말을 배울리는 만무하다.
그저 십여분 정도 쓰다듬다 가만히 있으면 책상 구석이나 의자 아래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거나 안방의 소파로 들어가 홀로 잔다.
그런데 오늘은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올라와 바라보더니 평소와 달리 거기에서 나를 향한 채 잠을 청했다. 우리 집에 온 반년여만에 처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정면으로 마주 보며 웅크린 채 잠든 자태를 보니 평소와 달리 짠하고 괜히 안쓰럽기도 했다.
냥이에게 나는 그야말로 순수한 의미의 '오직 한 사람'일터. 나야 녀석을 대하며 너는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고 내심 어느 정도 선을 긋는다. 하지만 냥이에게 나는 녀석의 세상 안에서 믿고 의지할 유일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심장이 뛰고 빨간 피가 도는 생명 하나가 나를 전적으로 의지해 잠들어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은 홀로 사는 처지에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그 감정이 생경하면서도 저릿해 한참 동안 녀석을 바라보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녀석을 가만히 앉아다가 안방의 본래 냥이가 잠드는 소파 위로 옮겼다. 냥이가 어느새 갸름하게 눈을 뜨더니 냐옹거렸다. 그 소리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굳이 해석하지 않아도 전해왔다. 어둠이 가려도 본질은 숨길 수 없는 생명과 생명간의 교감.
아마도 그 교감에서부터 세상의 모든 공존과 평화가 있을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생명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는 그 공존과 평화는 이렇게 일상의 평범한 순간을 깊고 고요하게 그리고 따스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