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홉 시에서 열 시쯤 일어난다. 빨래하고 끼니를 먹고 청소하면 반나절이 금방 간다. 오후에는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읽다가 그 자리에서 또 존다. 해가 저물면 나와서 동네 인근 식당 가서 저녁을 먹는다. 집에 들어가 다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SNS에 글을 쓰거나 지인들의 글에 댓글을 달다가 잔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다른 점은 일요일 오후에 성당 가서 미사를 드리거나 혹은 가벼운 산책과 쓰레기 분리수거 내지 산행 정도가 추가된다는 점. 물론 일요일 역시 누구를 만나거나 하지 않는다. 만나는 이가 없으니 뭔가 재미는 없다 하더라도 또 마음 쓸 일 없으니 심심할지언정 불편할 일은 없다. 게다가 고양이 녀석이 주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남들이 보면 평온하고 한가하며 여유로운 주말의 일상이다. 능히 부러워할 만도 하다. 이렇게 자신을 위해 온전히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주는 불안감 또한 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고 있지 않냐?'는 내면의 질문이 종종 불거지기 때문이다. 늦잠을 자고 졸리면 또 자고 배고플 때 먹고 머리 쓰는 일을 하지 않은 채 어쩌면 본능에 몸을 맡겨 보내는 주말의 시간들. 이를 나태함이란 단어로 요약해도 반박하지는 못하겠다. 훗날의 여유로운 생존을 위해 이른바 자기계발을 하고 부단히 배워도 모자랄 판에 그저 몸과 마음의 평온에 젖어 게으르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또 나름의 ‘논리’를 세워 합리화한다. 먼저 건강을 핑계된다. 에이형 간염과 대상포진으로 몸의 회복력이나 면역력이 전 같지 않다. 때문에 과로를 하면 몸의 어느 부분에서 이상 징후들이 나타난다. 해서 주말에 꼬박 12시간씩 자고 나면 ‘보약을 먹었다’며 '병원 값 굳었다'라고 여긴다. 최근에 수면 부족이 치매와도 관련성이 높다는 기사들을 읽으면서 보다 이런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또 세상의 사기꾼들은 하나같이 부지런했다는 것도 주말의 나태함을 방어하는 논리다. 게으른 사람이 가족을 힘들게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회악(?)으로 성장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게다가 나야 어찌 되었든 간에 주중에는 그래도 ‘성실’한 직장인인 편이니 굳이 주말에까지 부지런을 떨며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른하고 한가하고 게으르게 보내야만 가질 수 있는 ‘중용’이 있다. 군자라면 내면이 단단해 물리적으로 바쁘게 보내더라도 마음속 중용을 지킬 수 있겠으나 나 같은 장삼이사는 물리적으로 정신없이 보내면 필시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만 쏠릴게 뻔하다. 주말이라도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 유유자적하다 보면 그나마 마음이나 정신의 쏠림을 방지할 수 있다.
물론 주말의 이러한 여유와 한적함은 필시 홀로 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일정 부분 기득권에 들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해서 더더욱 지금 주말의 이 나태함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커진다. 어쩌면 이러한 비어있고 담담한 주말의 시간들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일 수 있다. 누리고 즐기는 이가 불행과는 먼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삶의 경험으로 알 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