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제법 걸었다. 일요일에는 당직하러 회사 나갔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남산에 올라갔다 왔다. 월요일에는 퇴근길에 회사가 있는 명동에서부터 청계천을 따라 성북천을 끼고 성신여대 앞까지 걸었다.
엊그제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인왕산 아래 옥인동 일대를 산책했다. 퇴근길에는 옥인동에서부터 자하문 지나 백사실 계곡 입구가 있는 부암동까지 걸어왔다. 최소 7~8킬로미터는 족히 되었을 듯싶다.
날이 좋아서 걸었다. 모처럼 걸어도 목이 아프지 않은 날씨. 게다가 봄꽃들은 저마다 여기저기서 피어나 한껏 아름다웠다.
봄날을 즐기려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걷다 보니 봄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나처럼 봄의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으며 나름 들떠있는 사람들을 오며 가며 흘깃 보는 것도 좋았다. 절로 주어진 것을 만끽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일은 삶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었고 나는 그 신호들에 한껏 감응했다.
장자가 말한 ‘호접몽’이 이런 경지 일지는 모르겠으나 사지육신 멀쩡해 걸었고 보았고 감지했고 내가 나인지 바람이 나인지 달빛이 나인지 개울소리가 나인지 모를 짧은 순간마다 지나치는 혼란도 내심 황홀했다. 경계가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찰나가 주는 아득함과 맑은 취기들이 살랑살랑 너울거렸다.
며칠간 일상의 틈을 내어 걸으면서 딱히 경제적인 이득이 생긴 것도 아니지만 무언가 채우고 벌고 쌓아놓았다는 느낌 덕에 한동안 잠식해 있던 정서적인 허기가 가셨다. 각박해 보이는 도심 속 숨겨놓은 듯 한 봄의 풍경들을 꼭꼭 확인하며 남들이 놓쳤을 법한 계절의 환희와 보드라움과 설렘과 속삭임과 춤사위와 여백과 연함을 온전히 내 것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손해 중에는 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살아있어 절로 누릴 수 있는 것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며 외면한 채 혼자 집에만 처박혀 있는 것도 결국 자기 손해다.
홀로 걷는다 해서 내 가는 길에 한 아름 가득 필 봄꽃이 손 뼘 만하게 필 것도 아니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나만 피해 가는 것도 아니다. 봄볕은 적당히 따뜻하고 딛는 발걸음마다 흩날리는 꽃향기들은 절로 노랫말을 흥얼거리게 한다. 그 순간 비록 동행 없이 걷는 사람이라 해도 행복을 만끽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