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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74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고양이 동거기

by 월영

요즘 주말에 가장 자주 하는 일은 침대에 눕거나 의자를 젖히고 앉아 배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고 마주 얼굴을 본 채 어르고 달래다가 같이 조는 것이다.


고양이 녀석과 언어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콧등을 만져주는 단순한 스킨십이 전부다.


사회생활로 인해 빚어지는 내 잡다한 상념이나 복잡한 생각을 녀석은 인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을 비폭력적으로 만져주고 세 끼 밥을 제때 주는 다른 존재에 대해 본능적으로 믿고 온전히 몸을 의탁할 뿐이다.


아침에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저녁 먹고 한 번 그러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때문에 주말 내내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거나 소파에서 널브러져 있거나 책상 앞 의자를 뒤로 젖히고 멍하니 있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야 냥이 녀석이 나에게 와서 안기기 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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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침대에 누워 녀석을 배 위에 올려놓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끼를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고 그 새끼를 쓰다듬으며 체온과 기분을 교감하는 행위. 거기에 필요한 시간이 어쩌면 양육을 하는 아비나 어미가 보장받아야 할 최소한의 삶의 조건이고 그 삶의 조건의 보편성을 위해 또 인류가 문명의 발전을 추구해 오지 않았을까?'


그저 살아 숨 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말로는 다하지 못할 벅찬 무엇을 주기도 하는 어리고 어린 생명. 그 생명이 전적으로 나를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 우리의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 자존감이 높아지는 시간에 대해 사회가 얼마큼 보장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의 자존감이 실은 행복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임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 적지 않다. 집안에 털이 날리고 고양이의 배설물 냄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영원히 나의 말을 구체적으로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다. 또한 녀석에게 노후를 기댈 수도 없거니와 녀석의 삶은 나보다 빨리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기에 떠나보내는 아픔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거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먹먹하다.


하지만 녀석과 함께 삶의 시간을 같이 하면서 덕분에 혼자 사는 사람이 놓치는 여러 가지 감정이나 사회의 구조 등에 생각해보고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도 늘어난다. 여기에 비록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지만 양육이지만 양육을 하는 존재만이 누릴 수 있는 정서적인 만족감을 미약하나마 체감해보는 것도 녀석 덕분이다. 아마도 그 만족감은 부모들이 사회에서 받는 숱한 모멸이나 혹은 구차함을 버티어내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아니기에 녀석에게 기대하는 것 없이 그저 건강한 생존 자체만으로도 더 바라는 게 없다. 그게 중요하다. 어차피 생명이란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또 은총이란 사실.


내 배위에 누워 나의 들숨과 날숨에 맞춰 이른바 '골골송'을 부르는 고양이의 안온하고 무탈한 모습. 어쩌면 내가 주말에 누리는 가장 큰 호사이고 휴식이며 충전이다. 그러한 순간들을 쌓고 쌓는 일이 홀로 사는 하루하루라 할지라도 삶의 충만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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