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동거기
“지금 시간 좀 있으세요? 급한 일인데”
올 3월 말 일요일 오후. 오래 알고 지낸 지인으로부터 오래간만에 카톡이 왔다. 부활절 전의 사순시기. 동네 성당의 주일 저녁 6시 미사에 다녀와 모처럼 주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저녁밥을 굶고 대신 맥주 한 캔으로 끼니를 때우려던 찰나였다.
지인의 카톡은 긴박함이 가득했다. 지인 또한 한강 건너 서울 남쪽 성당에 다니는 신자. 동네 성당의 저녁 8시 미사를 가려던 참에 유기된 고양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인은 카톡으로 고양이 임시보호 가능하냐고 물었다. 미사 가는 길에 일단 급하게 구조는 했지만 고양이가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끝에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지인에게 나는 ‘성당 다니는 사람’이고 동종업계 선배이기도 하다. 또 최근에 유기된 고양이를 데리고 온 집사이기도 했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톡을 보냈다고 했다.
대개 일요일 오후 저녁에 미사를 다녀온 다음 밥을 먹으며 반주를 하는 게 오랜 습관이었다. 하지만 그날 마침 맥주를 마시려던 찰나에 카톡을 본 것이다. 술이라도 마셨으면 음주운전을 핑계로 어렵다고 했을 터이나 맨 정신이었다. 또 성당에 다녀온 마당에 거짓말을 하기도 멋쩍었다. 무엇보다 혼자 지내는 송이가 안쓰러워 한 마리를 더 입양해볼까 고민하던 터에 이것도 묘연인가 싶어 일단 내가 임시보호를 하겠다며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의 시동을 걸었다.
어느새 우리 집의 주인인양 자리를 잡은 송이도 애초에 유기묘였다. 일산의 상가에 버려진 녀석을 인근 동네 주민께서 구조해 넉 달을 돌봐주고 치료해 준 덕에 우리 집에 와서 반려묘가 되었다. 그 이후 나도 ‘유기된 고양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나’라는 모종의 부채감을 지니게 됐다. 게다가 주변에 반려묘를 키우는 분들로부터 한 마리는 외로우니 두 마리를 키우는 게 좋다는 조언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던 무렵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일요일 오후에 주차장에서 차를 빼는 것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매일 같이 주차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일요일 오후에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 나오면 이내 그 자리는 차 버린다. 해서 일요일 오후에 차를 몰고 어디를 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차를 세우지 못해 아파트 단지 바깥에 차를 세우고 월요일 새벽에 다시 차를 가지고 들어오는 일이 꽤나 귀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차를 꺼내어 지인의 동네까지 차를 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신기하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고양이에 대한 마음이 귀찮음을 이겨낼 정도가 됐다는 증거여 서다. 일요일 오후의 쓰레기 분리수거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일도 어지간히 짜증내면서 하는 터라 이런 게 팔자인가 하면서 차를 몰았다.
지인은 입양처를 알아볼 때까지 임시보호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인이 구조한 유기묘는 이제 한 살 정도 된 어린 고양이였다. 지인이 자주 가던 동네 미용실에서 지난해 봄에 태어난 고양이. 하지만 미용실 사장님이 집안 사정으로 갑자기 낙향하면서 키우던 고양이 중에 몇 마리는 거두지 못하고 가셨단다. 사람 손을 탔던 고양이였던 지라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문 닫힌 가게에서 웅크리고 있던 녀석을 발견해 결국 성당 가는 길에 지인이 구조한 것이다. 지인도 유기된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였지만 키우는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를 데리고 오면 스트레스로 하악질만 해서 거두기 어렵다며 나에게 임시보호를 부탁했다.
구조한 고양이는 터키쉬 앙고라와 길고양이가 믹스된 종인 듯했다. 털이 긴 장모종이었고 갈색 털과 하얀 털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겁이 많아 계속 숨었다. 케이지에 옮겨와 지인 녀석이 아는 동물 병원으로 갔다. 수의사께서는 촉진을 해보더니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며 다만 구내염과 눈병이 의심된다고 했다. 염려하는 지인에게 내가 따로 동물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볼 테니 걱정 마라고 안심을 시켰다.
녀석을 데리고 오면서 사실 걱정이 스믈 스믈 피어났다. 송이와 녀석이 과연 함께 지낼 수 있을지를 전혀 예상할 수 없어서다. 송이는 페르시안친칠라 치고도 몸집이 작은 녀석인 데다가 나이도 많다. 하지만 데리고 온 유기묘는 나이가 어리지만 송이보다 몸집이 컸다. 행여 두 녀석이 사이가 좋지 않거나 혹은 송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쩌지 싶었다. 털빛이 갈색이 이고 암컷이라 일단 녀석의 이름을 ‘금순’이라 지었다. 금순이는 낯선 환경에 위축되어 계속 가르랑 거리기만 했다.
집에 와서 먼저 송이와 금순이를 격리했다. 정확히는 송이의 화장실을 집 현관으로 옮기고 거실과 베란다 사이의 문을 닫고 금순이와 송이가 서로의 몸에 닿지 않도록 했다. 베란다를 금순이 전용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송이와 금순이는 유리로 된 미닫이문으로 서로 바라만 볼 수 있게 했다. 송이보다 금순이가 더 신경이 쓰였다. 녀석은 구석을 찾았다. 베란다 한쪽 붙박이장 아래의 구석으로 들어가 먼지를 뒤집어썼다. 나오려 하지 않았다. 위생상 좋지 않을 듯싶어 억지로 끄집어내고 구석을 막았다. 그렇게 실랑이를 몇 번씩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금순이의 건강이었다. 녀석은 화장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오줌과 변을 베란다 바닥에 봤다. 게다가 변은 설사였다. 거의 일주일 동안 베란다가 난장판이었다. 금순이를 데려온 후 일주일 된 주말. 녀석을 데리고 수의사 후배의 병원에 갔다. 몇 가지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하고 약을 받아왔다. 송이의 주치의이기도 후배는 “형은 어디서 저렇게 얌전한 애들만 데리고 와요?”라며 금순이가 송이처럼 무척 순했다고 말했다.
금순이는 후배 녀석의 말처럼 순했다. 화장실을 가리지 못해 문제였지만 그 외에는 크게 울거나 하악질을 하거나 할퀴는 등의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송이를 봐도 딱히 경계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후배 녀석은 송이와 금순이를 합사 시켜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금순이가 화장실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것은 설사를 하기 때문인데 그건 약을 먹이면 치료를 할 수 있는 가벼운 병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주사기로 약을 먹이는 과정에서 금순이는 거세게 반항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일주일 정도 약을 먹였을 때 금순이도 제대로 된 변을 보기 시작했다. 그즈음에 송이에게도 베란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둘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이내 붙어 있기 시작했다. 다행히 둘은 사이가 좋았고 송이는 녀석을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그루밍을 해주었다. 금순이도 송이의 얼굴엘 머리를 비볐고 사료를 가지고 다투지도 않았다. 송이가 먹은 뒤에 금순이가 사료를 먹었고 둘은 종종 같이 똬리를 틀고 고양이 쿠션에 엉켜 있기도 했다.
그 모습에 은근히 시샘이 나기도 했다. 금순이와 친해진 이후 송이는 급격히 나를 모른 척(?)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퇴근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 앞에서 냐옹 거리며 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금순이가 집에 들어온 이후 어느 날부터 송이는 내가 퇴근을 하거나 출근을 할 때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또 밤마다 내 주변을 맴돌면서 야옹 거리는 일도 줄었다. 대신 금순이 옆에서 있었다. 밥을 챙겨주는 인간보다는 같은 종인 금순이가 더 편했을 것이다.
약 처방 덕에 금순이는 설사를 멈추고 차츰 정상적인 배변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송이와 무던하게 어울리는 금순이를 보면서 금순이도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는 대신 같이 키우기로 마음을 굳혔다. 고양이 쿠션 안에 들어가 꾹꾹이를 하는 금순이를 보면서 언젠가 녀석이 내 등위에 올라가 앞발로 꾹꾹 눌러주며 안마를 해주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여전히 송이보다는 쓰다듬는 걸 내켜하지 않고 곁으로 선뜻 다가오지 않는 녀석이었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녀석도 내게 마음을 열고 곧잘 얼굴과 뺨을 비비적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금순이와의 묘연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 인연을 끊은 것은 나였다.
기운을 차리고 송이와 어울리며 이제 새로운 삶터에 적응한 듯했던 금순이는 우리 집에 온 지 4주 정도 흐른 다음부터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사료를 먹지 않았다. 그리고 종일 잠만 잤다. 아직 어린 고양이가 식욕이 왕성할 터이고 잠보다는 깨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야 정상일 텐데 금순이는 갑자기 야위기 시작했다. 야옹 거리는 목소리도 점차 작아졌다. 불길한 마음에 다시 녀석을 데리고 후배의 병원에 갔다. 후배는 정밀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며 녀석을 하룻밤 입원시키기를 권했다. 진료실 안쪽으로 후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동료 수의사와 금순이를 놓고 하는 이야기였다.‘좋지 않다’는 직감이 들었다.
처음 금순이를 구조했던 지인은 울먹였다. 정말 가능성이 없냐고? 찬찬히 설명을 했다. 다른 병원에 가보면 다른 진단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수의대를 나와 고양이를 전문으로 돌보는 수의사인 후배가 진단한 결과였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금순이의 증상은 후배가 말한 병의 증상과 같았다.
이미 진행이 되어 오히려 숨을 쉬는 게 더 힘들 것이라고 후배가 말했다. 차분하게 물어봤다. 대개 어떻게 하냐? 후배는 담담하게 답했다. 저는 안락사를 권합니다.
금순이가 고양이의 불치병인 급성 복막염에 걸린 것이다. 집에 온 지 4주 지나고서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배가 볼록하게 나오면서 윤기가 흐르던 털은 어느새 뻣뻣해지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숨을 가쁘게 내쉬는 것이 보였다.
인터넷으로 고양이 관련 카페와 사이트를 찾아 확인해봤다. 생후 1년 정도의 고양이가 복막염에 걸렸다가 살아난 경우가 없었다. 치료약이 없기 때문에 시간은 끌 수 있어도 결국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경험담들만 보였다.
진단을 받고 다시 금순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후배는 진통제 같은 것 외에는 금순이에게 처방해줄 수 있는 약이 없다고 했다. 일주일 치를 달라고 했다. 최소한 녀석과의 이별에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듯했다.
일주일 동안 녀석의 증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었다. 불치병에 걸린 생명체가 내는 숨소리는 처연했다. 송이는 녀석이 아프다는 것을 눈치챈 듯 자주 자신의 얼굴을 금순이의 얼굴에 비벼댔다. 치료를 더 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됐다. 그러나 확률이 너무 낮았다. 치료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송이가 그랬다면? 그 지점에서 금순이에게 미안했다. 송이가 복막염에 걸렸더라면 아마 몇 백만 원을 써서라도 치료를 위해 애썼을 듯했다.
하지만 금순이에게 송이만큼의 깊은 정은 들지 않았다. 애초 송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에 입양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데리고 온 녀석이었다. 친밀감과 애정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 송이가 우선이었고 금순이는 후순위였다. 마음속에 벌어지는 묘한 안도감. 머릿속에서의 여러 가지 계산. 그 모든 것이 뒤섞이면서 마음과 머리가 같이 복잡해졌고 심란했다. 그럼에도 애써 태연했다.
그래서 금순이를 구조했던 지인에게 약간은 매몰차게 말했다. 더 살기 어렵다. 안락사가 최선이다. 굳이 금순이의 마지막을 보러 오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그러나 너만 더 힘들 것이다. 오지 말아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
금순이를 케이지 안에 넣기 전 일부러 송이를 녀석에게 안기듯 떠밀었다. 송이에게 앞으로 금순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단다 라고 말을 건넸다. 송이가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게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다. 금순이는 자신의 운명을 짐작하기는 할까? 별 저항 없이 순순히 케이지 안에 들어가는 녀석을 보니 심장 박동이 자갈밭을 뛰듯 쿨렁거렸다 틈틈이 그 과정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으면서 마음이 어느 때보다 무거운 이유를 애써 잊으려 했다.
비록 고양이, 짐승, 동물일지언정 눈빛으로 교감하는 생명체가 내 결정에 의해 삶을 마감한다는 일이 벌어지기 전. 일상은 늘 그렇듯이 어느 하나 변화 없이 그 순리대로 흐르고 있었다. 녀석의 생명이 지닌 그 무게가 이렇게 한 없이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병원으로 가는 길 일부러 영화 아마데우스의 OST를 틀었다. 어처구니 없이 괜히 레퀴엠을 반복해 들었다.
토요일 오전 동물병원의 모습도 그저 어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후배에게 물어봤다. 안락사 자주 하냐? 안락사 많이 할 때는 하루에 대 여섯 번도 해요. 안 힘드냐?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뭐. 금순이처럼 병에 걸려서 불가피한 경우야 어쩔 수 없는데 이사 간다고, 키우기 어렵다고 그냥 안락사시켜 달라는 사람들도 꽤 많아. 그런 건 해주지 않지. 안락사하면 어떻게 하냐? 동물들 전용 화장시설이 있기도 하고 거기서 납골당을 마련해주거나 아니면 화장한 가루로 스톤 같은 거 만들어 가지기도 해요.
후배는 잠시 자리를 비워주었다. 케이지 안에서 나온 금순이는 겨우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듯이 보였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잠시 녀석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데리고 올 때부터 무언가 우수가 스며있던 녀석. 자신의 삶이 길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녀석 또한 그걸 알 리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송이라면 납골묘까지 만들었겠지만 금순이는 일반적인 안락사 코스로 결정했다. 마취제를 주사한 뒤 잠든 상황에서 약으로 안락사를 시킨 다음 안락사 한 다른 동물들과 함께 화장하는 코스였다. 다시 들어온 후배는 금순이를 쓰다듬더니 진료실로 들어갔다. 금순이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만약 금순이를 구조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 구조를 한 지인은 오히려 구조를 했기 때문에 사는 환경이 바뀌어 그 스트레스로 금순이가 병에 걸린 게 아닐까? 하며 자책했다. 나 또한 내가 어떤 권리로 다른 생명이 생사여탈을 결정했나? 싶어 우울했다. 차라리 녀석의 존재를 몰랐더라면. 혹은 한 달 동안 녀석을 보호하며 병원에 다니고 잠자리를 설치고 돌봤던 게 결국 헛고생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다행히 나는 어느 정도의 관혼상제에도 익숙해진 중년에 접어들었고 일상의 바쁜 속도에 바로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금순이의 안락사를 결정하고 금순이를 안락사시키고 돌아온 다음 그 여파가 삶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어느덧 무덤덤해진 생로병사에 대한 감수성은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쉽게 ‘금순이’를 잊게 해주었다. 금순이를 안락사시키고 온 그 날에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했고 신나게 웃거나 맛있는 것을 먹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산티아고 여행에 들떠 금순이의 부재 자체를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여행길에서 동네 길고양이들을 종종 봤다. 녀석들을 보다 보니 금순이가 생각났다. 버림받지 않고 그저 동네 풍경이 되어 살고 있는 고양이들. 산티아고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후배 부부에게 맡겼던 송이를 한 달여 만에 데리고 온 뒤 베란다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 송이를 보니 또 금순이가 생각났다. 잠시, 잠시,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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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내가 활용하는 소셜미디어 안에 은근히 금순이의 사진과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이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여행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확인해본 예전 타임라인에 금순이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사진과 동영상 속에 금순이는 핑크빛 고양이 쿠션 안에 들어가 꾹꾹이를 하고 있거나 송이와 어울려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도 있었고 녀석의 독사진도 제법 많았다. 그걸 보고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고 쓰는 건 거짓말이지만 녀석이 분명히 주고 간 것들이 적지 않았다고 쓰는 건 거짓은 아니다.
녀석이 눈 감기 전의 세상은 아프고 힘들었겠으나 다시 눈 떴을 때의 세상은 낯설더라도 아프지 않은 곳이었기를 바란다. 사실 내가 태어나 나와 종이 다른 생명의 영혼이 따스한 곳에 가기를 기도했던 적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위해 순례길 도중 몇 번은 진심으로 묵주를 돌렸다. 무엇보다 아직 내가 사람 아닌 생명의 죽음 이후 49재 즈음에 맞춰 글을 써 본 적은 없었다. 이 글이 그런 글의 처음이란 걸 알면 무지개다리 넘어 있을 금순이가 나를 마냥 원망하진 않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