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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76
아직 누군가에게는 남아있다

by 월영

사람의 관계는 대화의 밀도에 따라 차등이 생긴다. 대화는 단순히 언어 외에 비언어적이고 신체적인 교감까지 포괄한다. 연애란 대화의 밀도로 가늠할 수 있는 관계다. 대화의 밀도가 높아질 때 연애라는 관계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밀도가 높아지는 상황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없어야 한다.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과 스스로 매력이라 생각하는 무엇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내고 싶은 무의식이 작동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조건이 맞았을 때 상호 연애라는 감정이 비로소 싹트기 시작한다.


따지고 보면 연애란 다른 맥락과 시간 안에서 살아온 개인과 개인이 서로에게 ‘최적의 타인’이 되는 과정의 설렘과 기쁨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환희와 보람과 질투와 안정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연애의 끝은 결혼이거나 이별이다. 이별을 선택할 때는 또 다른 사람에 대한 가능성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결혼을 선택할 때는 오직 한 사람이라는 당위성만 주어진다. 결혼은 하지 않아도 연애는 하라는 말의 이면에는 연애와 결혼. 두 가지 관계가 끝났을 때 결혼이 감당해야 할 피해와 상처가 더 크기 때문이란 경험적 충고가 담겨있다.


때문에 성숙한 연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숙한 연애는 연애의 숱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나 실수나 오해, 심지어 관계의 단절까지 간다 해도 상대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고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숙하지 못한 연애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개인과 개인 나아가 가족의 파멸로까지 이어진다.


성숙한 연애를 위해서 상호 간에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대화의 밀도 외에도 명도와 채도, 농도 등 그 관계에서 오고갈 수 있는 온갖 대화의 색감이 세밀해져야 한다. 서로의 내면에 있는 다채로운 자아의 색깔을 상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지지하고 묘사하며 또 다른 나로서 상대와 정교하게 교감하며 합일하기 위해서다.


연애의 신비한 면은 애초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도 연애라는 과정을 통해 성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성숙하다고 스스로를 여겼던 사람일지라도 연애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비루함과 저열함을 확인하는 고통과 좌절을 겪기도 한다.


비자발적이거나 자발적으로 연애 상황에 놓이지 않은 이들이 감내하는 것이 바로 대체하기 어려운 정서적 갈증이다. 그 갈증은 대화의 밀도가 낮은데서 오는 심리적, 육체적 허기에서 비롯한다.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한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고 그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글을 쓰는 일이다.


글을 써 내려가는 순간들만큼은 상대가 굳이 눈앞에 실존하지 않아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설령 혼잣말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숱한 생각과 감정은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위안한다. 그 위로와 위안들이 오직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질 것이라 믿는 순진함과 미련함이 아직 누군가에게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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