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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Apr 06. 2019

나 외에는 신경 쓸 사람이 없다

일본 오카야마·나오시마·도쿠야마  외 3박4일

*
같이 갔던 건 명확하게 기억났지만 함께 무엇을 보았는지는 잊고 있었다는 걸 그 자리에 가서야 깨달았다.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 시간 순서대로 머릿속에 남아 순차적으로 떠오르지 않고 특정 시간 특정 상황만 마치 그때의 전부인양 기억하고 있다가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그제야 그때의 시공간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려 애를 쓴다는 걸. 다시 한번 몸으로 체감했다.


안도 타다오가 지은 지추미술관에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 3개가 있지만 원주의 뮤지엄 산에는 아예 제임스 터렐을 위한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해놨다. 나오시마 섬에 끌렸던 이유는 뮤지엄 산에서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같이 봤던 그 사람 때문이기도 했다.


연애를 잘 못하는 이유는 혹은 혼자 계속 사는 데 별 불만이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연애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그 기대치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지고 볶는 그 관계 이면에 서로의 무언가 우아한 사고와 정서와 예술적 감흥을 교감할 수 있는 관계. 


이 지점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리고 터렐의 작품을 같이 봤던 그 사람은 그 로망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았던 이였다. 뮤지엄 산에서 터렐의 작품을 함께 보며 나누었던 대화들은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지추미술관에서 뮤지엄 산에 있는 작품과 유사한 작품을 홀로 감상할 때 불쑥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때의 막막함이란. 동시에 나이 마흔 중반에 이르는 내 사회적 관계망 속의 ‘나’란 존재가 참 부질없기도 하거니와 비본질적인 게 아닐까 싶어 피식거렸다. 다행히 과거 회피적인 감상에 마냥 빠져들어 마음마저 내렸던 비 마냥 축축해질 때쯤 나를 현실세계로 인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여 이거 머 볼 거 있다고 온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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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복에 등산배낭을 매신 한국 장년층 어르신들이 특유의 호기로운 목소리로 조용한 공간에 존재감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
싼 가격에 혹해 결재를 한 다음에야 정신이 들었다. 취소할 수 없는 특가. 전혀 생각지 않았던 도시 도쿠시마에 있는 호텔이었다.


작년 리스본에서 호스텔에 묵은 뒤 이제 내 나이에 도미토리는 민폐라는 생각에 앞으론 가급적 호텔에서 묵기로 작정을 했다. 그러나 도미토리는 하룻밤 자는 게 목적인 내게는 거부하기 힘든 싼 값의 유혹. 이를 이겨내고 가성비 최고로 예약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나오시마 섬에서 나오면서 6만 원을 포기하고 애초 계획했던 구라시키로 갈 것인가 했다가 6만 원이 아까워 도쿠시마로 왔다. 그 탓에 처음 생각했던 코스는 어긋났고 내일과 모레 일정을 짜느라 꽤나 궁리를 했다. 도쿠시마는 내 기준에 그렇게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던 터라 오는 길에 마음이 복잡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보자며 도쿠시마 시내를 돌아다녔다. 밤이라 볼 건 별로 없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운치가 있었다. 사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내 멋대로 다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 스스로 뭔가 못마땅한 듯 여기로 오는 길에 표정이 굳어있었을까 싶었다.


한 시간 남짓 시내를 돌아다니며 이 동네가 숨겨놓은 여러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바람만 많이 불지 않았더라면 더 돌아다녔겠지만 그러기엔 바람이 좀 매서웠다. 찬 데다가 허기가 올라와 편의점에 가서 적당히 끼니를 채울 간편식과 술을 골라 호텔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청승을 부리며 먹고 마시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일본에 와서 여러 번 편의점에서 술을 샀지만 처음으로 만 20세냐고 물어보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야말로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공간에 떨어져 살짝 부유하는 느낌이 여행이 주는 실제 큰 혜택이란 걸 이젠 좀 알 것도 같아서다.


***
혼자 여행을 다니면 나이를 덜 먹으려는 나를 만날 수 있어 좋다. 나 스스로 일정을 짜야하고 움직여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누구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상황. 오직 나만 챙기면 된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내가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 계속 놓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떠나오면 나 외에는 신경 쓸 사람이 없다. 나에게 관심을 집중하면 자연히 나는 내가 가장 좋았던 시절의 나를 상정해 반응한다. 그 좋았던 시절은 아마도 대부분 20대와 30대일 것이다.


아직 어설프지만 세상 가장 무서운 욕심은 노욕인 듯하다. 나이를 먹었으니 응당 그만큼의 대우를 받고 그만큼 사람들을 하대하고 싶다는 욕망. 하지만 홀로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 욕망이 커나갈 수 있는 여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홀로 여행을 다니면 자유를 부지불식간에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자유란 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쩌다 종교적 분위기에 세뇌당하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물리적 노화에 따른 고루하고 권위적인 태도에 젖지 않는 정신적인 유연함인 거 같다. 홀로 여여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삶. 이게 또 유명한 이들은 하지 못하는 익명의 소소한 개인이 누리는 호사일 게다. 그 호사를 간헐적으로나마 누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


****
출장으로 세 번, 어머니 모시고 한 번, 개인 여행으로 이번이 두 번. 합이 여섯 번 일본에 왔다. 학창 시절 일제 쓰는 친구들에게 꽤나 잔소리했던 1인으로서 아직도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감정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 몇 번 와보면서 이 나라에 대해 오해했던 부분을 많이 풀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자주 오면 우리가 가진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보고 또 자극을 주고받을 것이다.



일본이 식민지 시절 자행한 과거의 유린에 대해 독일 정도로만 사과하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 선두에 나서 애를 쓴다면 참 좋을 거 같다는 막연하고 나이브한 생각을 한다. 그들이 한반도와 중국에서 저지른 만행과는 별개로 일본을 통해 우리가 얻은 선진문물 마저 부정하기는 어렵다. 차후에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 사안이다.


주 5일 열심히 근무하고 주말에 푹 쉬고 연차 제대로 쓰면서 가끔 이렇게 혼자 가볍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삶. 욕심 아니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런데 이런 욕심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또 그 욕심을 부려도 일상이 무너지거나 삶의 질이 후퇴하지 않는 삶. 그 삶을 사는 이들이 대다수인 곳이 선진국일 것이다. 식민지를 경영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선진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다시 생각해보는 밤이다. 



나만 잘났다 경쟁하지 말고 너도 나도 적당히 어울려 소소하고 소박하고 소탈하게 저마다 행복한 삶을 사는 세상이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긍정하고 그 삶을 고맙고 감사히 여길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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