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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Apr 06. 2019

단잠도 여행이 주는 선물

일본 오카야마·나오시마·도쿠야마 외 3박 4일

*

서른 중반 이후부터 다니기 시작한 국외 배낭여행을 세어 보니 대충 이렇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만레사, 몬세라토에서 6박 8일. 일본 오사카와 교토에서 2박 3일. 이탈리아 로마와 아씨시, 그리스 아테네 일원에서 7박 10일. 스페인 마드리드와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파티마와 리스본 등에서 총 20박 21일 그리고 일본 오카야마, 나오시마, 도쿠야마, 히메지에서 3박 4일.


혼자 사니까 가능했던 여정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렇게 다녀온 건 운이 좋은 경우이기도 하다. 요샛말로 덕업 일치까지는 아닐지라도 평소 궁금했던 걸 직접 확인하거나 혹은 신앙적인 동기에서 갔던 여행지였고 문화부 취재를 하면서 어쩌다 쌓인 잡다한 지식 덕에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았던 여정이었다. 이번 일본 3박 4일도 그러하다.


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 입구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구라시키의 오하라 미술관. 가기 전 몇몇 블로그에 올라온 후기를 읽어본 결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꽤나 충격적이었다. 1930년대 도쿄나 오사카 고베 등 간사이 지역의 큰 도시도 아닌 구라시키 작은 동네에 문을 연 사립미술관. 오디오 가이드 설명을 들으면서 아. 한숨이 종종 나왔다.


내가 뭘 안다고 미술 기자 한답시며 이런저런 기사를 썼을까 하는 후회. 또 일본에 유학 갔던 근현대 작가들 가운데 아마도 누군가는 이곳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거나 좌절했을 거라는 상상. 숱한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폐관 시간 가까워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게 그래도 미술 담당하면서 보고 들었던 게 있었으니 가능한 일.


현장에 오면 파편적으로 알았던 지식들이 부서지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고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온전히 그 맥락을 파악하게 된다. 그때 감정적으로 부끄러움이 크지만 뭔가 깨어지고 나서 단단하게 올라오는 통찰을 얻을 때도 있다. 오하라 미술관에서 그랬다. 식민지 시대 일본 유학파들. 그네들은 얼마나 복합적인 감정에 혼란을 느꼈을까. 당대 미술의 최전선과 교류하고 그 작품들을 직접 자기 나라로 가지고 들어왔던 일본인들을 보면서.


구라시키 미관 지구 야경

친일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을 비하하고 일본에 부러운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이면에 어떤 정서적 심리적 기저가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좋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고 그럼에도 한국의 근현대사가 어느 부분에선 자랑스럽기도 했고 그랬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와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 조금은 유추할 수도 있었고.


**

다니면 다녀볼수록 섣불리 뭔가를 안다고 넘겨짚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몇 번 다녀왔다고 내가 이 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일본과 비교해 우리를 비하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임은 분명하다. 일본이 지닌 장점. 개인의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점이 가장 도드라진다. 


본인이 그렇게 하면 된다. 쓰레기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거리에 침 뱉지 말고 말 조용조용히 하고 등등. 무엇보다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키우면 된다. 일본이 딱히 부러운 건 하나. 아이들을 키우는 환경이나 교육 방식이 우리보다는 조금 더 철학적인 기반이 있는 거 같다. 일본의 저력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은데. 이것도 앞서 말한 듯이 피상적으로 보고 아는 척하는 것이다. 이런 걸 경계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


*** 

모처럼 걷고 보고 말하지 않다 보니 정신적으로 맑게 개어지는 게 있다. 반면 자잘한 실수. 가령 열차를 잘못 탔다던가, 괜히 돈을 썼다고 마음에 두던가 하는 것들이 맞물리면서 혼자 여행은 출렁거리기도 한다. 그래도 새로운 환경과 비교를 통해 내 환경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등등 좋은 점이 더 많다. 행복이란 게 뭘까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의 강도가 높은 상태라고 말하겠다.


구라시키 중심의 신사에 놀러 온 유치원생들


그런 측면에서 지금도 행복하긴 한데 송이 녀석이 보고 싶기는 해서 계속 유지하고 싶다곤 못하겠다. 맥주 대신 마신 하이볼의 취기가 이를 잊게 해 주려나. 아니면 취기가 오히려 더 나 외의 누군가를 그립도록 해주려나. 고민하기 전 만 보 이상 걸은 내 육신은 다행히 수면을 바라고 있다. 그러고 보니 꿈을 안 꾸고 잔 이틀이다. 오늘도 그러하길. 단잠도 여행이 주는 선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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